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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한 번도 일본에 안 가본 사람이 일본 문화 연구서를 쓸 수 있을까요?

루스 베네딕트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입니다.

일본과 미국이 한창 태평양 전쟁을 치르던 1944년 6월,

미국 정부는 베네딕트에게 일본 연구를 의뢰합니다.

일본인은 ‘미국이 여태껏 싸운 적(敵) 중에서 가장 낯선 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을 이기려면 베네딕트와 같은 인류학자가

 ‘일본의 참모습’을 밝혀줘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베네딕트는 전쟁 때문에 일본에 가볼 수가 없어서

책 논문 영화 신문과 같은 자료만으로 일본을 연구했습니다.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각막과 망막으로 이뤄진 눈을 통해서 사물을 봅니다.

초점을 모으고 원근을 취하는 눈의 기능에 따라 우리가 보는 세계도 달라지는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보는 세계가 원래 모습 그대로라고만 생각합니다.

사실 한 사람의 눈에 관한 일은 본인보다 안과의사가 더 잘 알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지만

본인의 세계관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는 스스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베네딕트는 안과 의사와 같은 인류학자만이 철저하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문화와 세계관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베네딕트 여사가 ‘냉철하게’ 파악한 일본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지방의 권력자인 다이묘는 자기 땅의 농민들이 생산한 쌀을 거두어 사무라이들에게 나눠줬습니다. 농민은 결코 무기를 소지할 수 없었고,

오직 사무라이만 무기를 가질 수 있었지요. 이 무기로 적들을 때려눕힐 때는

멋있어 보였겠지만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의 사무라이는 무척 괴로운 계급이었을 겁니다.

 

유럽의 기사에게는 영지와 노예가 할당되지만

사무라이는 영주가 아니기 때문에 땅을 소유할 수도 없었고, 농사를 지어서도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농민보다도 가난했고,

 이렇게 가난했기 때문에 가족 수를 철저하게 제한하기도 했습니다.

얼핏 보면 영주인 다이묘가 사무라이를 보살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농민이 사무라이를 먹여 살렸던 겁니다. 사무라이는 기생(寄生·더부살이) 계급,

다이묘는 브로커(broker·중개인), 농민은 국가 전체를 지탱하는

아틀라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신·프로메테우스의 형제로

제우스에게 하늘을 두 어깨로 메는 벌을 받았음)에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밖에도 베네딕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는 흥미로운 것이 많습니다.

준법투쟁을 벌였던 농민항쟁, 천황의 지위를 강화하는 반동 혁명으로

아시아 최고의 선진국이 된 일, 은혜를 최고 가치로 삼는 풍토 등

우리가 잘 몰랐던 일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우리가 보기에,

또 아시아 사람이 보기에 자극적이고 거슬리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일본 문화의 유래를 이야기할 때 왜 백제 신라 조선의 이야기는 빠졌을까,

일본을 이렇게 신비하고 요상하게 보는 관점이 과연 객관적인 관점일까,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자연스러운 현상을

이 서양인은 왜 이렇게 낯설게 그리는 걸까라는 의문들이 계속 떠오릅니다.

 

이 질문들에 답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직접 읽어보기 바랍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미국에는 일본학의 대가가 많습니다.

우리는 일본에게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일본을 잘 모릅니다.

일본에 대해 그저 흥분하고 화내는 일에만 익숙합니다.

두 가지 사실이 있어도 한 가지 사실만 보면서 덮어놓고 일본을 미워할 때가 많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국학, 한국 민속학의 근간은 조선총독부가 쌓았습니다.

신라의 향가도, 조선 민중들의 무속신앙도 일본인이 먼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한국 근대 문화의 원천을 제공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본을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일본은 그저 독도를 빼앗으려 하는

 못된 인간들, 역사를 왜곡하려 하는 파렴치한 족속들, 그

러면서도 한국에 수학여행을 오는 이해할 수 없는 민족이 사는 땅입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고전여행-理知논술/이수봉 학림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