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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희덕/ 어두워 진다는 것은






어두워진다는 것   
침묵¸ 혹은 그늘의 소리들

서평 : 오형엽·수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저자 : 나희덕 지음
출판사 : (주)창작과비평사
2001.04.15./118쪽/5,000원

 
 
나희덕의 시는 ‘저녁 어스름’의 시이다. 낮과 밤의 경계에서 그 경계를 지우며 서서히 진행되는 어스름은¸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이며 과정 중에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어스름’은 빛과 어둠¸ 삶과 죽음¸ 흰색과 검은색이 상호 침투하는 중간 지대에서

사물들의 감각적 현존 속에 숨겨져 있는 본래적 양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시인의 무의식 속에 침전된 기억들을 호명하며 길어 올린다.

 

멀리서 수원은사시나무 한그루가 쓰러지고
나무 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기억은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
- 「어두워진다는 것」 부분

 

‘어두워진다는 것’은 “5시 44분의 방이/5시 45분의 방에게/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이며

“슬픈 집 한 채를 들여다보듯/몸을 비추던 햇살이/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이다.

나희덕 시의 주조를 이루는 ‘저녁 어스름’은 시간화된 공간¸ 공간화된 시간의 전이 과정이며¸

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는 단지 수동적인 위치에 놓이는 것처럼 보인다.

주체는 ‘나’가 아니라 시간이며 시간화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햇살이 그 온기를 거두어가고 나서 발견되는 “슬픈 집 한 채”는

나희덕이 바라보는 사물과 존재의 실상이 고독과 우수의 아우라로 휩싸여 있음을 드러낸다.

‘저녁 어스름’을 통해 발견되는 사물과 존재의 궁극적 실상은 바로 “어둠”이며¸

이 ‘어둠’은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에서 보듯 근원적 고독과 허무의 심연이다.

이러한 심연이 드러나는 순간 되살아나는 ‘기억’은 생의 현장에서 한 발 거리를 두고 그 아픔을 확인하고 위무한다.
‘어스름’속에서 되살아나는 ‘기억’은 그리하여 나희덕의 시에 현재로부터 과거로 이어진 역전의 시간성을 개입시킨다.
「어두워진다는 것」에 함축되어 있는 이러한 나희덕 시의 전체적 의미 구조는 응축과 확산 운동을 통해 다양하고

중층적인 시적 형상화의 파장으로 번져간다. 나희덕의 시에서 시인이 사물과 존재의 실상으로 파악하고 있는

‘어둠’은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

1) 뿌리뽑힌 줄도 모르고 나는
몇줌 흙을 아직 움켜쥐고 있었구나
자꾸만 목이 말라와
화사한 꽃까지 한무더기 피웠구나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弔花인 줄도 모르고
- 「몰약처럼 비는 내리고」 부분

2) 그래도 꽃을 잃고 난 직후의 벽오동의 표정을
이렇게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발견이다
꽃이 마악 떨어져나간 자리에는
일곱살 계집애의 젖망울 같은 열매가 맺히기 시작 했는데
나는 그 풍경을 매일 꼭꼭 씹어서 키우고 있다
누구도 꽃을 잃고 완고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6층에 와서 벽오동의 上部를 보며 배운다
- 「벽오동의 上部」 부분

3)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바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이 멀 것만 같아
몸을 낮게 웅크리고 엎드려 있었을 뿐
떠내려가기 직전의 나무뿌리처럼
모래 한알을 움켜잡고
오직 그가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그럴수록 바람은 더 세차게 내 등을 떠밀었다
- 「바람은 왜 등뒤에서 불어 오는가」 부분

 

1)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을 ‘꽃나무’로 비유한다. “화사한 꽃까지 한무더기 피웠”지만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弔花”에 불과한 이유는 그가 “뿌리뽑힌”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태로부터 내팽개쳐진 근원적 상실감과 갈증은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밤’과 상통하는 연쇄망을 이루는데¸ 몰약처럼 내리는 비는 “너무 많은 소리들”로 “시들어가는 몸을 씻어내리”고 무거워지는 날개만큼 다시 가벼워져서 밤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한다.
2)에서 시인은 꽃을 잃고 난 직후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벽오동을 관찰하며 생의 원리를 발견한다. “꽃을 잃고 완고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벽오동과 인간 존재의 유비를 통해 삶이 곧 상실이며 상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캄캄한 씨방 속에 갇힌 꿈들이” “단단해지”고 “완고해지는” 것은 상실과 상처를 통해 본래적 생의 욕망과 환희가 마모됨으로써 폐쇄된 자아 속에 갇히는 양상을 보여준다.
3)은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생의 근거가 흔들리고 마침내는 “툭¸ 탯줄이 끊어지고/존재의 둑을 휩쓸고 들어오는 물결 속”에 휩쓸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화자가 오직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이 ‘바람’은 생의 뿌리를 흔들고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외부 세계로부터 오는 시련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유사한 제재를 형상화한 「해일」에서는¸ 외부 세계의 힘인 이 ‘바람’에 의해 수동적으로 휩쓸리는 모습과는 달리¸ 그 힘에 의해 촉발되어 “아니라 아니라고 온몸을 흔”들며 “스스로 범람”하는 ‘숲’의 모습을 보여준다.
존재의 비극적 실상인 ‘어둠’에 압도적으로 휩쓸리면서도 그것 과 대면하여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은 빗방울이 지닌 ‘소리들’(「몰약처럼 비는 내리고」)과 나무들의 ‘일렁임’(「해일」)으로부터 발생한다. 그러므로 나희덕의 시는 ‘어둠’에 맞서는 힘을 ‘저녁 어스름’이 가져다주는 ‘소리들’과 ‘바람’이 가져다 주는 ‘움직임’에서 얻는 것이다.

 

1)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구름 옮겨가는 소리
지붕이 지붕에게 중얼거리는 소리
그 소리에 뒤척이는 길 위로
모녀가 손 잡고 마을을 내려오는 소리
발 밑의 흙이 자글거리는 소리
계곡물이 얼음장 건드리며 가는 소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아지
다시 고개 돌리고 여물 되새기는 소리
마른 꽃대들 싸르락거리는 소리

소리들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겨울 승부역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고요도 세 평
- 「소리들」 부분

2) 아주 먼 데서 온 바람이 숲을 건드리자
숨죽이고 있던 모래알갱이들까지 우우 일어나 몰려다닌다
저기 거북의 등처럼 낮게 엎드린 잿빛 바위¸
그 완강한 침묵조차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숲은 출렁거린다
아니라 아니라고 온몸을 흔든다 스스로 범람한다
숲에서 벗어나기 위해 숲은 肉脫한다
부러진 나뭇가지들 떠내려간다


- 「해일」 부분

1)에서 시인은 예민한 감각으로 숲과 자연과 사물들의 미묘한 ‘소리’를 듣는다. 나희덕의 마음의 귀는 사물의 움직임을 소리의 파문을 통해 듣는 것이다. “저녁이 오는 소리”(「그 복숭아나무 곁으로」)와¸ “초록이 물비린내 풍기며 중얼거리는 소리”(「小滿」)와 “비닐봉지 속에서 무슨 소리”(「탱자」)를 듣는 것은 관찰과 반응의 주체를 의식 및 사유로부터 무의식 및 감각으로 전이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 이 소리들은 생의 상실과 상처와 아픔을 위무하며 ‘어둠’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힘과 희망을 제공한다.
그리고 2)에서 “숲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몸을 흔”들며 “스스로 범람”하는 ‘숲’의 역동적 움직임은 ‘바람’으로부터 그 원동력을 제공받는다. 이 숲은 “잿빛 바위/그 완강한 침묵조차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자발적으로 출렁거린다. 그런데 1)과 2)에서 ‘소리들’과 ‘출렁거림’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고요”와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저 소리로는
저 소리만으로는
스스로 暗電될 수 없어
소리를 기록할 수 있다고 믿게 된 때부터
상처를 반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 때부터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소리가 태어난 침묵 속으로
- 「축음기의 역사」 부분

‘침묵’은 ‘소리’의 모태이다. 나희덕의 시에서 ‘저녁 어스름’ 속에서 피어나는 온갖 사물들과 존재들의 ‘소리’는 다름 아닌 이 ‘침묵’이라는 근원적 자리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따라서 「소리들」의 “고요”와 「해일」의 “침묵”은 세계의 ‘어둠’을 극복하는 ‘소리들’과 ‘출렁거림’을 낳는 근원적 깊이를 지니는 공간인 것이다. 나희덕의 시에서 이러한 ‘침묵’의 공간은 ‘그늘’이라는 형태로 변주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옛 동헌 앞에 심어진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 드물게 넓고 서늘한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잊은 듯
웃고 있을 것이고당신은 말없이 앉아 나뭇잎만 헤아리다 일어서겠지요
허나 당신¸ 성문 밖으로 혼자 걸어나오며
단 한번만 회화나무 쪽을 천천히 바라보십시오
그 부러진 나뭇가지를 한번도 떠난 일 없는 어둠을요
그늘과 형틀이 이리도 멀고 가까운데
당신께 제가 드릴 것은 그 어둠뿐이라는 것을요
언젠가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
-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부분

이 시는 해미읍성에 있는 “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의 대립적 의미와 그 둘 사이의 균형을 말하고 있다. ‘회화나무’는 밧줄과 사슬이 낳은 상처와 죽음과 형틀의 ‘어둠’을 대변하는 데 반해¸ ‘느티나무’는 “드물게 넓고 서늘한” ‘그늘’을 제공한다. 이 ‘그늘’은 「그 봉숭아나무 곁으로」에서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나무가 지닌 “그늘”로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을 지니고 있는 “여러 겹의 마음”이다. 이 “여러 겹의 마음”은 중간색이 지닌 불확정성 속에서 ‘저녁 어스름’을 통해 과거로 열려진 기억을 다시 미래에 대한 예감으로 연결시킨다.

나를 처음으로 뚫고 지나갔던 바늘 끝¸
이 씨앗과 꽃잎과 물결과 구름은
그 통증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헝겊의 이편과 저편¸ 건너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언어들로 나를 완성해다오
오래 전 나를 수놓다가 사라진 이여
- 「오래된 수틀」 부분

시적 화자는 “오래된 수틀”을 보며 “누군가 나를 수놓다가 사라져 버렸다”라고 말한다. 그 이후 “씨앗들은 싹을 틔우지 않았고/꽃들은 오랜 목마름에도 시들지 않았”으며¸ “파도는 일렁이나 넘쳐흐르지 않았고/구름은 더 가벼워지지도 무거워지지도 않았다.” 화자는 자신을 처음으로 뚫고 지나갔던 바늘 끝의 통증을 기억하면서¸ 그가 다시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건너가면/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언어들로 나를 완성해다오”라는 말에는 “팽팽한 그 시간 속”¸ 즉 현생에서 놓여나 생을 완성하고 싶은 초월 혹은 해탈의 욕망이 스며들어 있다. 이처럼 나희덕의 시는 과거에의 회상과 미래에의 예감 사이에서 생애를 조감하며 그늘과 어둠¸ 고요의 소리와 바람의 일렁임¸ 생의 열망과 초월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는 ‘저녁 어스름’의 그 거센 소용돌이를 침묵 속에 침전시키고 있다. 결국 나희덕의 시는 상처와 죽음이라는 비극적 운명의 ‘어둠’ 앞에서 ‘저녁 어스름’이 지닌 ‘침묵’과 ‘그늘’이라는 근원적 자리가 빚어내는 ‘소리들’과 ‘일렁임’인 것이다. 나희덕은 이 소리들과 일렁임을 통해 우리에게 존재의 슬픔과 아름다움¸ 상처와 환희¸ 생의 열망과 초월의 욕망을 동시에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小滿 지나
넘치는 것은 어둠뿐이라는 듯
이제 무성해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나무는 그늘로만 이야기하고
그 어둔 말 아래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우고

小滿 지나면 들리는 소리
초록이 물비린내 풍기며 중얼거리는 소리
누가 내 발등을 덮어다오
이 부끄러운 발등을 좀 덮어다오
- 「小滿」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