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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ic. /classic.III

♠.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에런 코플런드 著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에런 코플런드 著

 

 

 

 

 책 소개---

 

 

 

전 세계적으로 150만 부 이상 팔린 음악 교양서의 고전과도 같은 책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주변에는 음악의 수만큼이나 많고 다양한 음악 청취자들이 있지만 그중 스스로 음악을 잘 듣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전문가나 이미 오랜 세월 청취 훈련을 거듭한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 그중에서도 ‘클래식’이라 불리는 고전음악 앞에서 일종의 거대한 벽을 경험한 적이 한두 번쯤은 있으리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가만히 듣기만 하면 될 텐데 그토록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 우리에게 그 이유를 친절히 설명해주고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위로까지 해줄 뿐 아니라, 좀 더 잘 듣기 위한 전문가적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주는 고마운 사람이 있다. 바로 미국 음악의 목소리,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곡가 에런 코플런드Aaron Copland(1900-1990)다. 그는 퓰리처상을 받은 발레곡 〈애팔레치아의 봄Appalachian Spring〉을 비롯해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로데오Rodeo〉 같은 작품을 남겼고, 〈여상속인The Heiress〉, 〈우리 마을Our Town〉 등 영화음악 작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코플런드는 단순히 곡을 쓰는 데만 그치지 않고 연주자, 교사, 위원회 회원, 그리고 의욕적인 지휘자로도 활동하며 일평생 음악에 헌신했다.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원제: What to listen for in Music)》(1938, 1957)는 그런 그가 작곡가이자 교사로서 또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친숙하게 느끼고 잘 들어 낼 수 있도록 남긴 역작이다. 1939년 초판 발행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150만 부 이상 팔려나간 음악 분야의 고전 중의 고전인 이 저작은, 애초 같은 제목으로 뉴욕의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진행된 15회짜리 강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거의 8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빛나는 생명력이 이 책의 가치를 대변해준다. 교육자나 평론가 등 음악 분야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시각에서 다양한 저술을 남겼지만, 이 책은 음악의 내부자인 ‘작곡가의 입장’에서 일반인과 음악학도를 대상으로 ‘듣기의 기술’을 설명한 최초의 시도이자 체계적인 개론서라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갖는다.

 

 

著.Aaron Copland

 

아론 코플랜드 에런 코플런드(Aaron Copland, 1900년 11월 14일 ~ 1990년 12월 2일)는

순음악에 미국의 이미지를 심어 놓은 작곡가이다.

1900년 11월 14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계·러시아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리에 유학했고, 귀국 후 현대음악과 대중이 유리되어 있음을 보고 멕시코 여행의 인상을 바탕으로 한 <엘 살롱 멕시코>(1937)를 발표하여 넓은 음악층을 사로잡았다. 그 뒤로 코플런드는 미국적인 요소를 순음악으로 살려, 미국이라는 이미지를 클래식 작품에 심는 데 성공하였다. 이 계열의 작품은 발레곡 <로데오>, <애팔래치아의 봄>, <빌리 더 키드>, 오페라 <텐더 랜드>, 영화음악에 <생쥐와 사람들>, <빨간 망아지>, <우리의 거리> 등이 있으며, 넓은 대중층을 획득하였다. 반면 코플런드에게는 <제3교향곡>을 비롯한 절대음악적인 작품 계열도 있어 2가지 면을 지닌 작곡가이다.

 

목차---

 

에런 코플런드, 미국 음악의 목소리 _ 레너드 슬래트킨
서문 _ 앨런 리치
도입 _ 윌리엄 슈먼
1939년 초판 저자 서문
1957년판에 부친 저자의 글
감사의 글

1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2 음악을 듣는 방식
3 음악의 창조 과정
4 음악의 4대 요소 - I. 리듬
5 음악의 4대 요소 - II. 선율
6 음악의 4대 요소 - III. 화성
7 음악의 4대 요소 - IV. 음색
8 음악의 텍스처
9 음악의 구조
10 기본 형식 - I. 구획적 형식
11 기본 형식 - II. 변주곡 형식
12 기본 형식 - III. 푸가 형식
13 기본 형식 - IV. 소나타 형식
14 기본 형식 - V. 자유 형식
15 오페라와 음악극
16 현대음악
17 영화음악
18 작곡가에게서 연주자로, 연주자에게서 감상자로
에필로그, ‘그 이후의 이야기’ _ 앨런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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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그는 미국 특유의 진취적 기상을 대표하는 작곡가였다. 그는 또한 뉴욕의 심장 고동소리였다. 그를 그저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 정도로 치부하는 건 온당한 대접이 아니다. 에런 코플런드는 혁신자들로 가득한 나라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선구자요, 개척자였다. 미국에서 태어나 세계 음악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곡가를 꼽으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이 그리 많진 않다. 아이브스, 거슈윈, 바버, 번스타인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이 목록의 가장 꼭대기 자리는 응당 코플런드의 몫이다. --- p.6「레너드 슬래트킨(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중에서

맨해튼의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라는 학교에서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What to Listen for in Music’를 주제로 진행한 강의록을 모은 단행본으로, 자그마한 분량 안에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담은 책이었다. 코플런드의 책은 클래식 음악을 쓰고 듣는 경험을 언어로 옮기려 시도한 최초의 사례는 아니었지만, 실제로 음악을 창조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이른바 ‘내부자’가 자신을 둘러싼 예술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표현해 담은 책이라는 점에서는 선례가 없는 최초의 시도였다. 바로 그러한 점이 수많은 열혈 독자를 양산하게 된 이유이리라. --- p.12「앨런 리치(음악평론가)」중에서

1936년과 1937년을 잇는 겨울, 코플런드는 여러 차례 강연회를 열었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2년 후 이 책의 출판으로까지 이어졌다. 강의 제목 역시 이 책과 마찬가지로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였다. ‘들어 낼’이라는 표현이 문법적으로 어딘가 어설프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거기에는 ‘음악을 듣는 법’이라는 심심한 문구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뉘앙스가 실려 있어 그만큼 더 정확한 표현이라 하겠다. “이 곡이 내게 놀랍게 다가오는 결정적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이다”라는 식으로, 코플런드는 아름답게 엄선한 단어를 이용해 독자를 끊임없이 일깨우고 있다. --- p.17「앨런 리치(음악평론가)」중에서

코플런드가 가르쳐준 덕분에 우리는 시벨리우스Jean Sibelius(1865-1957) 교향곡의 구조적 특이성, 쇼팽Frederic Chopin(1810-1849)의 작은 전주곡에 담긴 극적 충격,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1893)의 교향시가 스토리라인과 음악을 연결하는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가슴으로 배운 교훈을, 이 얇은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훌륭한 다른 작품에 적용하는 법을 깨우치게 된다.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 세계, 그 핵심에 흠뻑 빠져들면 우리 또한 위대한 감상자가 된다. 저녁 식사쯤이야 좀 늦는다고 해서 큰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 p.27「앨런 리치(음악평론가)」중에서

우리 음악가들은 평론가나 작가로도 활동한 작곡가들이 음악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쓴 글을 익히 봐왔다. (…) 음악과 글에 고루 능통한 작곡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작곡 기술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코플런드가 최초다. 이 책은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한마디로 유일무이한 것이다. 렘브란트가 ‘그림에서 무엇을 보아 낼 것인가’라는 책을 썼다고 한번 가정해보라. 그러면 코플런드의 책이 가진 위상이 가늠될 것이다. --- p.38「윌리엄 슈먼(전 줄리아드음악원장, 링컨센터 초대 회장)」중에서

일개 작품의 운명은 기본적으로는 작곡가와 연주자의 손에 달린 것이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듣는 이의 태도와 능력에도 좌우되곤 한다. 작품과 연주를 받아들일 것인지 내칠 것인지를 결정하는 책임도 궁극적으로는 청취자에게 있다. 같은 작품을 같은 연주자들이 공연하더라도 그에 대한 반응은 관객에 따라 천차만별로 갈린다는 것을 음악가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이 인지하는 음악의 품질 여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청자의 수준 여하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이야기다. 음악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많은 이들이 그저 감정이라는 욕조 속에 들어앉은 채 소리에 둘러싸이는 감각적 차원의 반응에만 안주하고 만다. 하지만 음악에는 질서와 체계가 있음을, 음악은 감각적 호소력뿐만 아니라 지적인 호소력 역시 가지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 p.35

‘지적인 음악 감상의 기초를 최대한 뚜렷하게 정립한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음악을 ‘설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그 일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우쭐댈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음악 감상에 관한 책은 열이면 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교육자나 음악 평론가의 입장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이 책은 작곡가의 관점에서 쓴 책입니다. 작곡가에게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단순한 과정입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렇게 느끼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듣는 이가 무엇을 얻어내야 할지 굳이 설명해야 한다면 작곡 과정에 투입된 바가 무엇인지를 낱낱이 아는 작곡가보다 적임자는 없을 겁니다. --- p.39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저자세를 보일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만약 당신이 음악을 듣고 느끼는 본인의 반응에 대해 어떤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떨쳐버리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러한 열등감은 그럴 만한 근거를 가지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 p.48

독자들이 목표해야 할 과제는 좀 더 적극적인 종류의 청취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를 들을 때도,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1899-1974)을 들을 때도 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 깨어 있는 자세를 가질 때만이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하니까요. 그저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들어 내려 노력해야 합니다. --- p.63-64

만약 현대음악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시종일관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이어지는 불협화음의 연속으로만 들린다면, 그건 현대음악을 들은 경험이 부족한 탓이라고 결론을 내려도 무방할 겁니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잖습니까. 과거의 음악에 비해 요즘 음악을 더 많이 듣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말입니다. --- pp.123-124

음악에 있어서 구조란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이 재료를 논리 정연하게 조직하는 방식입니다. 다른 예술과 다를 바가 없지요. 다만 여타 예술과의 차이점이라면 음악의 재료는 유동적이고 다소 추상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입니다. 음악의 본질이 그러하기 때문에 구조를 쌓아 올리는 작곡가의 책무는 이중으로 난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163

무엇보다 앞서 유념하셔야 할 점은 대개의 창조적 예술가들은 진지한 의도를 가지고 작업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곧, 듣는 이를 골탕 먹이기 위해 곡을 쓰는 사람은 드물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듣는 입장에서도 작곡가의 좋은 뜻을 믿고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게 필요합니다. 기질과 표현 면에서 작곡가의 성향은 천양지차로 갈립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대음악 역시도 단 하나로 갈무리할 수 없는 다양한 음악적 경험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 p.308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이 논쟁거리가 되는 것을 마뜩치 않아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음악을 들어온 버릇이 뒤흔들리는 걸 꺼립니다. 그들은 음악이 마치 소파처럼 아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폭신한 베개처럼 그 위에서 뒹굴고 싶어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음악에서 풀고 위안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진지한 음악은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최면제로서 기능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특히 현대음악은 여러분을 잠재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흔들어 깨우기 위해 쓰이는 음악입니다. 듣는 이에게 충격과 흥분을 주기 위한 음악이며, 듣고 나면 온몸이 뒤흔들린 것 같은, 심지어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음악입니다. 따지고 보면 연극을 보러 가거나 소설책을 펼쳐 들면서 기대하는 자극이 바로 그런 것 아닙니까? 왜 음악만 예외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 p.316

우리가 어느 작곡가의 음악을 듣는다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일까요? 작곡가는 소설가처럼 이야기를 들려줄 의무감을 느끼는 존재가 아닙니다. 조각가처럼 자연을 ‘베껴낼’ 필요도 없습니다. 음악가가 쓴 작품은 건축가의 도면처럼 실제적 기능을 지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작곡가가 우리에게 주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제게는 오로지 하나의 대답만이 가능해 보일 뿐입니다. 작곡가가 주는 건 바로 그 자신입니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빚어낸 작품은 그 자신의 표현일 테지요. 하지만 음악의 경우는 작품과 창조자 사이의 관계가 한층 직접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곡가는 외부 ‘사건’에 기대지 않고 본인의 본질적인 부분 -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가진, 그리고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경험을 담은 가장 완전하고 깊은 표현 - 을 떼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 pp.333-334

자신을 흔쾌하게 음악에 내맡길 수 있으려면 우선 취향을 넓혀야 합니다. 관례적으로 좋아했던 면모에만 매달려서 음악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취향은 감수성과 비슷한 것이어서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자질이지만, 목적을 가지고 꾸준히 연습하면 계발시킬 수 있는 자질이기도 합니다. 즉 옛날 음악과 요즘 음악을 가리지 않고 보수적인 음악과 현대적인 음악을 차별하지 않으면서 모든 악풍의 음악에 동등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겁니다. 편견을 배제한 듣기가 요구된다는 겁니다. 감상자로서 여러분 각자가 가진 책임을 무겁게 여기십시오.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건 일반 사람이건 우리 모두 음악 예술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영원히 노력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리뷰---

 

그저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들어 내려 노력해야 합니다”

코플런드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독자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1)진행 중인 음악에서 모든 걸 들을 수 있는가? 2)음악의 진행에 정녕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만약 이 두 질문에 모두 “예”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저자는 즉시 이 책을 읽을 것을 주문한다. 질문에서 짐작하다시피, 저자의 입장에서 음악을 듣는 행위는 ‘히어링hearing’이 아닌 ‘리스닝listening’이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listen to’ 게 아닌, 노력을 기울여 모든 걸 ‘들어 내는listen for’ 행위가 되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음악 전문가 중에서도 코플런드와는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이들도 물론 있다. 즉 음악을 들을 때 언제나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저자가 생각하기에 일반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귀를 기울여 ‘들어 내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잘 듣는 사람이 되려면 노력이라는 수고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처럼 모든 걸 놓치지 않고 정녕 민감하게 듣기 위해서는 응당 음악에 대한 기본 지식이 축적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다.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는 총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의 4대 요소인 리듬, 선율, 화성, 음색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부터 시작해 음악의 텍스처와 구조, 나아가 음악을 구성하는 형식에 대한 다소 난이도 있는 설명까지 포괄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시작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니만큼 내용이 점차 어려워지려 하면 저자가 알아서 수위를 조절하며 독자를 안심시킨다. ‘2장. 음악을 듣는 방식’에서도 언급되듯, 지금까지 보통의 청자들이 ‘감각적 층위’에서 어떠한 사고도 배제한 채로 음악을 들어왔다면,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음악 자체가 말하고자 하는 ‘표현적 층위’를 읽어내고, 궁극적으로는 음악에 실제로 사용되는 재료와 구성 방식을 앎으로써 음악을 총체적으로 들어 내는 ‘순수 음악적 층위’에까지 도달할 수 있게끔 돕는 게 코플런드가 이 책을 쓴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본서는 1957년 개정판을 거치며 영화음악과 현대음악에 관한 장을 추가했다. 클래식 음악에만 한정하지 않고 음악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을 배려하는 저자의 의도가 읽힌다. ‘현대음악’이라는 말에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드는 음악 애호가들에게 코플런드는 작곡가란 무릇 진지한 의도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사람이지, 절대로 듣는 이를 골탕 먹이기 위해 곡을 쓰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부디 열린 마음을 가지고 기회가 될 때마다 반복해서 들을 것을 호소한다. 이 밖에도 각 장의 말미에는 코플런드가 추천하는 음반 목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습득한 내용을 음악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음악은 우리네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예술의 한 장르로 우뚝하다. 지난 세기에 쓰인 이 책이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이유는 음악을 향한 대중의 관심과 배움의 욕구가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만고의 진리는 여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음악을 그냥 듣기만 해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 책이 줄기차게 역설하는 대로 음악 감상이란 곧 경험과 배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기술’이기에, 꾸준히 연마하는 자에게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예술과 기술은 언뜻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이처럼 가깝게 자리하기도 한다. “집중해서 듣고, 의식적으로 듣고, 우리 지성을 모두 동원해” 듣는 음악 감상의 첫걸음을 이제 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