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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자와 세이지,무라카미 하루키 ..음악을 이야기 하다

 

 

 

 

 

 

책소개---

 

무라카미 하루키 기획!
불세출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의 일여 년에 걸친 특별한 인터뷰.
일본, 하와이, 스위스 등 세계 각지에서 진행된 두 거장의 클래식 대담

일본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지와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났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음악가로서 작가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큰 산을 이룬 두 거장의 만남이다. 음악 안의 자음과 모음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휘자와 글을 쓸 때 리듬을 중시한다는 소설가는, 오자와 세이지의 지휘로 사이토 기넨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브람스 교향곡 제1번 다단조 작품68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장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5번 내림마장조 작품82 등 다양한 곡을 함께 들으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오자와 세이지가 식도암이 발병하여 음악활동을 잠시 쉬게 된 차에 자타공인 음악 애호가이자 그의 오랜 팬인 무라카미 하루키 기획으로 성사된 반가운 인터뷰 프로젝트이다. 일여 년에 걸친 시간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나가와 현 자택이나 도쿄 작업실로 오자와 씨를 초대하기도 하고, 오자와 씨가 주관하는 ‘스위스 국제음악아카데미’의 수업이 한창인 스위스 레만 호수 연안으로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콘서트와 콘서트 사이, 제네바에서 파리로 이동하는 특급열차에 몸을 실은 오자와 씨 옆좌석에 앉기도 한다. 솔직한 아마추어 무라카미 하루키가 묻고, 담백한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지가 대답하는 품격 있는 클래식 여행으로의 초대!

 

저자----

 

Haruki Murakami,むらかみ はるき,村上春樹

 

처음으로 소설을 쓴 것은 29살때였다. 첫 소설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는데, 197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히로시마 카프와의 경기를 도쿄 진구구장에서 보던 중, 외국인 선수였던 데이브 힐튼 선수가 2루타를 치는 순간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1949년 일본 교토부 교토시에서 태어나 효고현 아시야시에서 자랐다. 국어교사이자 다독가였던 양친의 영향으로 많은 책을 읽고 일본 고전문학에 대해 들으며 자랐으나, 일본적인 것보다는 서구문학과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중학교 시절에 러시아문학과 재즈에 탐닉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 손에 사전을 들고 커트 보너거트나 리차드 브라우티건과 같은 미국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했다. 1968년 와세다대 문학부 연극과에 입학해 격렬한 60년대 전공투 세대로서 학원분쟁을 체험한다. 1971년 학생 신분으로 같은 학부의 요코(陽子)와 결혼,1974년 째즈 다방 '피터 캣'을 고쿠분지에 연다.「미국영화에 있어서의 여행의 사상」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7년간 다녔던 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했으며 이 작품으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했다.

1982년 장편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으로 제4회 노마 문예 신인상을 수상했고, , 전혀 다른 두 편의 이야기를 장마다 번갈아 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1985년 제21회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7년 『노르웨이의 숲』을 발표함으로써 일본 문학사에 굵은 한 획을 긋게 된다. 오늘을 사는 젊은 세대들의 한없는 상실과 재생을 애절함과 감동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전 세계 누적 1000만 부 이상을 기록하며 '무라카미 붐'을 일으켰다. 또한 1997년에는 옴진리교 '지하철 독가스 사건'을 취재한 특이한 르포집 『언더그라운드』를 발표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에 대한 평론집이 일본에서만 수십권에 이르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단정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작품을 통틀어 그는 현대사회의 소외된 군상들의 고독을 '나'라는 일인칭 시점으로 집요하게 파헤쳐왔다. 또한 하루키에 대한 평론에서 그치지 않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받고 자란, 이른바 ‘하루키 칠드런Haruki Children’이라 불리는 작가들이 등장, 하루키 리믹스 붐을 일으키고 있어 그의 문학이 가지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고 있다. 리믹스 소설이란, 다른 작가의 원작 소설을 작가 자신만의 개성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혼합, 변형, 재창조한 소설을 일컫는다. 모토기 후미오의 『회전목마의 데드 히트 REMIX』, 이누카이 교코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REMIX』 등이 있다.

하루키는 어렸을때부터 일본 문학을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영문학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일본적인 것들이란 단지 등장하는 여러가지 일본어로 된 지명과 이름들 뿐이다. 그래서 일본의 일상과 이야기를 작품에서 다루고 있으면서 전혀 일본에 국한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작가는 '슬픈 외국어'에서 의미없는 하나의 언어에 의존하여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일이 슬프다는 얘기를 꺼낸 바 있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언어로 결코 표현될 수 없는 개개인의 심리묘사와 의식세계를 탁월한 그만의 문체로 묘사해준다. 또한 언제나 작품의 끝에서 던져주는 여운들과 미완성인 듯한 느낌을 주는 스토리 구조는 더 없는 감동으로 독자들을 다음 작품으로 안내한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세계 40여 개국에서 번역,출판되었는데 특히 미국과 유럽 쪽은 ‘하루키 전집’이 발행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어, 그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일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2005년 「뉴욕타임스」는 아시아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해변의 카프카』를 ‘올해의 책’에 선정했다. 또 2006년에는 엘프리데 옐리네크와 해럴드 핀터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바 있는 체코의 ‘프란츠카프카 상’을, 2009년에는 이스라엘 최고의 문학상인 ‘예루살렘상’을, 2011년에는 카탈루니아 국제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빵가게 재습격』, 『댄스 댄스 댄스』, 『태엽감는 새』, 『언더그라운드』, 『스푸트니크의 연인』,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어둠의 저편』, 『도쿄기담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Q84』,『더 스크랩』,『중국행 슬로보트』,『이상한 도서관』 등 수많은 장·단편 소설, 번역물, 에세이, 평론, 여행기 등을 발표했다.

1981년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영화화 되었다. 2005년에는 이치가와 준 감독이 『토니 타키타니』를, 2010년에는 트란 안 훙 감독이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숲)을 영화화 했다

 

작가이야기""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고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허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저자----

오자와 세이지

 

1935년 만주 봉천(현, 중국 선양)에서 태어나 여섯 살 무렵 일본으로 이주했다. 일곱 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음악 명문인 도호 학교에 진학하여 사이토 히데오에게 사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지휘를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 그해 브장송 국제청년지휘자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했고, 이듬해 버크셔 음악센터(현, 탱글우드 페스티벌) 지휘자 콩쿠르에서도 쿠세비츠키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베를린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사사했고, 1961년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취임했다. 시카고의 래비니아 페스티벌(1964), 샌프란시스코 심포니(1970) 등의 음악감독을 역임했으며, 1973년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이래 근 삼십 년 동안 같은 오케스트라를 맡아 음악사에 진기록을 남겼다. 2002년부터 빈 국립오페라극장 음악감독으로 활약했고, 사임 후 2010년 빈 필하모니 명예단원 칭호를 받았다. 2011년 식도암 수술 후 휴식기를 가졌는데, 마침맞게 무라카미 하루키와 인연이 닿아 대담집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를 출간, ‘고바야시히데오상’을 수상했다. 그의 화려한 경력에 걸맞게 1994년 탱글우드 뮤직센터에 ‘세이지 오자와 홀’이 설립되었고,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1998), 일본 ‘문화훈장’(2008) 등을 수상했다. 특히 스승을 기리며 ‘사이토 기넨? 오케스트라’를 조직, 1992년부터 매해 나가노에서 ‘오자와 세이지&사이토 기넨 페스티벌 마쓰모토’를 개최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자와 세이지 음악교실을 열어 교육에 힘쓰는가 하면 미토 예술관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기에 앞서 - 오자와 세이지 씨와 보낸 오후 한때 010

첫번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둘러싸고 025
우선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부터
카라얀과 굴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굴드와 번스타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제르킨과 번스타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좌우지간 독일 음악을 하고 싶었다
오십 년 전 말러에 푹 빠졌다
새로운 스타일의 베토벤 연주란?
이머셀의 피아노, 고악기 연주의 베토벤
다시 굴드에 관해 이야기하다
제르킨과 오자와 세이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우치다 미쓰코와 잔덜링,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막간 1_레코드 마니아에 관해

두번째, 카네기 홀의 브람스 93
카네기 홀에서의 감동적인 콘서트
사이토 기넨과 브람스를 연주하는 것
후일에 가진 짤막한 추가 인터뷰_호른 호흡의 진상

막간 2_글과 음악의 관계

세번째, 1960년대에 일어난 일 125
번스타인의 부지휘자로 있던 시절
스코어를 철저하게 파고들어 읽는다
텔레만에서 버르토크까지
봄의 제전 - 비화 비슷한 것
무명 청년에게 어떻게 그런 대단한 일이 가능했을까?
후일에 가진 짤막한 추가 인터뷰_모리스 페레스와 해럴드 곰버그

막간 3_유진 오르먼디의 지휘봉

네번째,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둘러싸고 175
선구자로서의 사이토 기넨
번스타인이 말러에 집중하던 시절
그런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말러 연주의 역사적 변천
빈에서 미친다는 것
3번과 7번은 어쩐지 '수상쩍다'
오자와 세이지 + 사이토 기넨이 연주하는 거인
악보의 지시가 좌우지간 세세하다
말러 음악의 세계 시민성이란?
오자와 세이지 + 보스턴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거인
말러 음악의 결과적인 전위성
지금도 변화를 계속하는 오자와 세이지

막간 4_시카고 블루스에서 모리 신이치까지

다섯번째, 오페라는 즐겁다
원래 나보다 더 오페라와 인연 없는 사람이 없었다
프레니의 미미
카를로스 클라이버에 관해
오페라와 연출가
밀라노에서 받은 야유
고생보다 즐거움이 훨씬 크다

스위스의 작은 도시에서

여섯번째, “정해진 방식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때그때 생각하면서 가르치죠.” 319

후기입니다_오자와 세이지 359

 

 

책 속으로----

 

P.14~15 :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려니 다소 주제넘은 것 같고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말하자면, 몇 번 대화를 거듭하는 사이에 나와 오자와 씨에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의 질량이라든지 업적의 수준, 기량의 크기, 유명한 정도 같은 요소는 일단 빼고 그저 '살아가는 방식의 경향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첫째는 우리 둘 다 일하는 것에 한없이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듯하다는 점이다. 음악과 문학, 영역은 달라도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보다도 자기 일에 몰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그에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깊은 만족감을 얻는다. 그 일을 통해 결과적으로 무엇을 얻느냐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집중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시간을 잊고 그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상이다.


둘째는 지금도 젊었을 때처럼 굶주린 마음을 변함없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 더 깊이 추구하고 싶다, 좀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하는 게 일하는 데 있어, 또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모티프다. 오자와 씨의 언동을 보고 있노라면 좋은 의미에서(말하자면) 탐욕스러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납득은 한다. 자부심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만족하지는 않는다. 좀더 훌륭한, 좀더 심오한 것을 할 수 있을 터다 하는 감촉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시간이며 체력 같은 제약과 싸우며, 이뤄내겠다는 결의가 있다.


셋째는…… 고집이 세다는 점이다. 끈기가 있고, 터프하고, 그리고 고집스럽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누가 뭐라 하건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그로 인해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닥쳐도, 설령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미움 받는 한이 있더라도, 변명하지 않고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진다. 원래부터 꾸밈없는 성격에 늘 농담을 입에 달고 살고, 그런 한편으로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이지만, 그런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식은 매우 확고하다. 일관되고, 흔들림이 없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경우에 따라 어느 정도 깊이 사귀기도 했지만, 이 세 가지 점에 대해 이 정도로 '그래, 정말 그렇지' 하고 자연스레 공감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자와 씨는 내게 귀중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분명히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P.50~52 :

무라카미= 오자와 씨는 먼저 뉴욕 필에 있다가 그뒤 베를린으로 가신 겁니까?
오자와 = 그래요. 베를린 뒤 뉴욕 필에서 레니의 부지휘자를 하다가, 그뒤 카라얀 선생이 다시 베를린으로 불러주셨거든. 거기서 데뷔했어요. 처음 돈 받고 지휘한 게 베를린이에요. 이시이 마키하고 보리스 블라허의 오케스트라 작품, 그리고 베토벤 심포니를 지휘했죠. 1번이었던가, 2번이었던가.
무라카미= 뉴욕에는 얼마나 계셨는지요?
오자와 = 이 년 반. 1961년, 62년, 63년 도중까지 있었군요. 64년엔 베를린 필을 지휘하고 있었어요.
무라카미= 내는 소리가 확연히 다르죠, 당시 뉴욕 필과 베를린 필은.
오자와 = 완전히 다르죠. 지금도 다르고. 이만큼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고,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교류도 활발해지고, 문화가 글로벌화된 지금도 전혀 딴판이에요.
무라카미= 하지만 1960년대 초반 뉴욕 필은 소리가 특히 강하고 공격적인데요.
오자와 = 그래요, 요는 레니의 시대죠. 그 사람이 녹음한 말러도 얼마나 강한지. 그나저나 지금까지 이렇게 미끄러지는 연주는 들어본 적이 없군요.
무라카미= 아까 들은 굴드와의 협연도 미끄러지지는 않지만 소리는 꽤 경질이었죠. 미국 청중한테는 그런 소리가 먹혔을까요?
오자와 = 글쎄요,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무라카미= 소리가 극단적으로 다른데요.
오자와 =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는 말 있잖아요. 그런 경향이 가장 강한 게 미국 오케스트라거든.
무라카미= 유럽 오케스트라는 별 차이가 없다?
오자와 = 베를린 필이나 빈 필은 지휘자가 바뀌어도 자기들 색을 거의 고수하죠.
무라카미= 그렇지만 뉴욕 필은 번스타인이 그만두고 나서 이런저런 사람들이 상임으로 왔잖습니까. 메타라든지, (쿠르트) 마주어라든지.
오자와 = 불레즈도 있었고.
무라카미= 그때마다 딱히 오케스트라 소리가 바뀌었다는 인상은 없는데요.
오자와 = 그렇죠, 바뀌었다는 느낌은 별로 없죠.
무라카미= 다른 지휘자로 뉴욕 필 연주를 몇 번 들어봤는데 썩 좋지는 않더군요. 왜 그런 걸까요?
오자와 = 레니는 말이죠, 연습하면서 오케스트라를 확실하게 훈련하는 타입이 아니었거든.
무라카미= 자기 할 일 하느라 바빠서 말입니까?
오자와 =  음, 글쎄요. 천재 타입이라고 할지, 오케스트라를 훈련하는 재주는 별로 없는 사람이었어요. 교육자로서는 뛰어났지만 훈련에 잘 맞는다고 할 순 없을지도 모르죠.
무라카미= 그렇지만 오케스트라는 소설가의 문체 같은 것 아닙니까? 그럼 자기 문체를 확고하게 수립하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 같은데요……. 연주 레벨은 요구했을 테죠?
오자와 = 그야 물론 그렇죠.
무라카미= 그건 아까 말씀하신 디렉션 문제와 연관되는 겁니까?
오자와 = 음, 그것도 있지만, 방법을 훈련하지 않았거든요.
무라카미= 방법을 훈련하지 않았다는 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오자와 = 악기를 연주하는 법. 레니는 앙상블 방법에 관해 별로 주의를 주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카라얀 선생 쪽이 그런 걸 많이 했고.
무라카미= 앙상블 방법이란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오자와 = 앙상블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거죠. 그런 걸 가르치지 않았다고 할지,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천성으로 한달지, 천재적이랄지.
무라카미= 눈앞에서 실제로 오케스트라가 소리를 내는데, 그에 관해 ‘넌 이렇게 해라’ ‘넌 저렇게 해라’ 하는 실무적인 지도를 못 했다는 뜻입니까?
오자와 = 구체적으로 말하면 말이죠, 유능한 사람은, 아니, 프로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 지시를 내리거든요. 지금 이 순간엔 이 악기를 들어라, 자, 지금은 이 악기를 들어라, 하는 식으로. 그럼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딱 맞아들어요.
무라카미= 단원 모두가 그때그때 한 악기를 집중해서 듣는다는 말씀이군요.
오자와 = 그래요. 지금은 첼로를 들어라, 지금은 오보에를 들어라, 하는 거죠. 카라얀 선생은 그걸 정말 천재적이라 할 만큼 잘했거든. 연습할 때 확실하게 말해요. 레니는 오케스트라를 그런 식으로 훈련하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었고. 불가능하다고 할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겠죠.
무라카미= 그렇지만 자기가 내고 싶은 소리는 물론 머릿속에 있는 거죠?
오자와 = 당연히 있죠.
무라카미= 그런데 지도해서 그 소리를 만들어가는 걸 할 수 없었다?
오자와 = 네. 그게 참 이상한 게, 레니는 아주 뛰어난 교육자란 말이죠. 예컨대 하버드 대학에서 강연을 하게 됐다 하면 완벽하게 준비해서 아주 좋은 강연을 하거든. 워낙 유명하고 훌륭한 강연이라 책으로도 나왔는데 말이죠. 그런데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도 같은 걸 하느냐 하면 그게 아닌 거예요. 오케스트라에 대해선 전혀 ‘가르치는’ 태도가 아니에요.
무라카미 흠, 이상하군요.

 

출판사 리뷰----

 

리듬이 있는 글, 자음과 모음이 있는 음악!
솔직한 아마추어 무라카미 하루키가 묻고, 담백한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지가 답하다.
비평가들의 찬사와 더불어 ★ ‘고바야시히데오상’ 수상!


“나는 오자와 씨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조금이라도 더 많이 ‘좋은 음악’을 이 세상에 선사해주시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좋은 음악’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소중한 연료로 삼아 살기 위한 의욕을 충전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이루 셀 수 없이 많으니까.” _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기획으로 장장 일 년에 걸친 특별한 인터뷰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불세출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나 일본, 하와이, 스위스 등 세계 곳곳에서 음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로 비범한 음악애호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묻고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지가 답하는 형식인데, 학창 시절은 물론, 사이토 기넨 오케스트라가 탄생한 근원점인 스승 사이토 히데오에 대한 추억, 뉴욕 필 부지휘자 시절 레니 번스타인과의 에피소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빈 국립오페라극장 음악감독 재임 시절 이야기 등 거장 오자와 세이지의 음악 인생을 차분히 뒤돌아보면서 동시에 베토벤, 브람스, 말러 등 명곡 클래식의 음악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악보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할까 하는 전문적 지식부터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한 세세하고 기초적 이해까지 프로 음악가는 물론이고, 전혀 문외한인 독자에게도 매력적인 독서체험을 선사할 것이다. 무라카미는 백발의 마에스트로 앞에서 문외한임을 고백하며 내내 겸손을 표하지만, 그가 적지적시에 던지는 스마트한 질문과 무심한 듯하지만 성심성의껏 질문에 임하는 오자와 씨의 회답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음악상의 깊숙한 내용도 친근하게 접속하게 된다.

자유로운 정신과 유연한 지성을 근간으로 새로운 세계상을 제시한 작품(단, 픽션 외에 한함)에 수여하는 ‘고바야시히데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특히 표지 사진은 일본을 대표하는 사진가 아라키 노부요시가 맡았다. 롯폰기에 위치한 아라키 스튜디오에 한데 모인 세 거장의 모습이라니 이 역시 진풍경이었을 법하다. 한편, 일본 출간 당시, 데카Decca에서는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속에 등장한 곡들을 세 장의 CD로 한데 엮어 정식으로 출시하여, 장기간 오리콘차트 1위를 기록하며 책과 함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책 속의 플레이 리스트★

-요하네스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제1번 나단조 작품15
글렌 굴드/뉴욕 필하모닉(지휘_ 레너드 번스타인)
-루드비히 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3번 다단조 작품37 1악장 Allegro con brio
루돌프 서킨/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_ 오자와 세이지)
-요하네스 브람스 교향곡 제1번 다단조 작품68 4악장
사이토 기넨 오케스트라(지휘_ 오자와 세이지)
-장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5번 내림마장조 작품82 3악장
베를린 필하모닉(지휘_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서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_ 오자와 세이지)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2번 다단조 부활 5악장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_ 오자와 세이지)
etc.

세기의 만남! 소박하지만 고급스러운 백자 사발 같은 음악 에세이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도쿄기담집》에 이어 비채의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일곱번째 작품이다. 다음 여덟번째는 장편소설 《애프터 다크》이다. 담담한 다큐멘터리가 연상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로, 권영주의 꼼꼼하고 단단한 번역으로 2015년 상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다.

 

 

미디어 리뷰 ----

 

 

 

 

 

 

 

 

[책 속으로] 하루키와 만난 클래식 거장, 내게 음악이란 …

 

중앙일보 | 중앙일보의 채인택 논설위원 | 2015-01-10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80)는 세계적 지휘자다. 미국 보스턴심포니 음악감독을 1973~2002년 29년 동안 지냈으며 2002~2010년 빈 국립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으로 일했다. 그 전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배웠고, 레너드 번스타인 밑에서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4년간 일했다. 그런 그를 인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6)가 여러 차례 만나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무라카미는 클래식부터 재즈까지 수많은 음반을 수집하고 즐기는 음악애호가다. 그의 날카로운 질문 앞에 대가는 조금씩 말문을 열고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낸다. 불꽃 튀는 일합을 보는 듯하다. 무라카미가 날카로운 칼이라면 오자와는 돌파력이 강한 창이다. 한 대목을 보자.

 ▶오자와=말이 안 통해도 외국에서 오케스트라한테 자기 의사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명확히 전달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그만한 지휘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죠.

 ▶무라카미=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자기가 뭘 어떤 식으로 하고 싶은지를 뚜렷하게 정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소설로 말하자면, 문체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이걸 꼭 쓰고 싶다’ 하는 게 마음속에 강력하게 있어야 한단 말이죠. 그런 게 안돼 있는, 또는 그런 게 불가능한 음악가가 세상에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자와=그러기 시작하면 음악 자체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정말로 잘못하면 엘리베이터 음악이 돼요.

 삶의 지혜가 덤으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고담준론만 있는 게 아니다. 둘은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제1번 제3악장을 들으면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무라카미=말러 1번의 피날레에서 호른 주자 7명이 전원 일어서는데요. 그런 것도 악보에 지시가 있는 겁니까?

 ▶오자와=그래요. 전원이 악기를 들고 일어서라고 악보에 쓰여 있어요.

 ▶무라카미=그거 음악적으로 무슨 효과가 있는 겁니까?

 ▶오자와=글쎄요(생각한다). 뭐, 악기 위치가 높아지니까 소리에 어느 정도 차이가 생기지 않을까요?

 ▶무라카미=데몬스트레이션인가 했는데.

 오자와에게 묻고 싶은 질문 중의 하나가 “동양인이 서양에서 서양음악을 하면서 어떻게 그런 위치까지 올라갔을까”이다. 오자와는 고교·대학 시절 학교 오케스트라를 계속 지휘해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는 점, 스승인 사이토 밑에서 기초를 단단하게 다졌다는 점을 든다. 대가의 대답치고는 싱거운가? 하지만 그런 튼튼한 기초가 대가라는 건축물을 이루는 바탕임을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