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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을 깨우는 책읽기

 

 

 

 

 

영혼을 깨우는 책읽기/ 이현경 글/ 교양인/ 2012년/ 378쪽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혼에 눈뜨도록 이끌어준
스물여덟 권의 책읽기

 
마음을 치유하는 데도 공부가 필요하다. 이성으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영혼으로 하는 공부다.
마음공부는 삶의 괴로움에서 빠져나올 문을 훤하게 열어주고,
결국에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 자신이 바뀌는 길로 나를 이끈다.
저자가 걸어온 마음공부의 여정을 인도한 등불이자 지팡이가 바로 책이었다.

《영혼을 깨우는 책읽기》는 의사소통 전문 교육자인 저자 이현경이 마음공부를 하며 만난 스물여덟 권의 책읽기에 관한 기록이다.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과 자신이 겪은 인간관계의 갈등을 치유하는 길을 찾던 저자는 우연처럼
‘영혼을 깨우는 책’들을 만남으로써 마음공부에 입문했다.
책을 읽으며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자신과 세상이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모든 존재가 이어져 있음을 실감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법과 나를 고집하는 대신 내려놓는 법을 배웠고,
거기서 곧장 존재의 근원에 다가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한 사람의 가슴을 울리며 다가온 영혼의 메시지는
잔물결 퍼지듯 번져 나가며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도 공명을 일으킨다.”

‘영혼을 깨우는 책’은 어떤 책일까? 묵은 아픔을 치유하고 아픔 너머 성장으로 안내하는 책이고,
시련과 역경을 스스로 극복할 힘을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누리도록 일깨우는 책이다.
욕망과 습관에 떠밀려 가는 나를 일깨워 내가 본래 누구이며 삶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알도록 이끄는 책이다.

심리학책이나 과학책이나, 동화책이나 시집이나,
스님이 썼거나 수녀가 썼거나 모두 나를 내려놓고 비움으로써 참다운 존재에 이르도록 길을 열어주는 책이다.
지성에 호소하는 대신 영혼에 직접 말을 걸어 이제 그만 잠에서 깨어나라고 속삭이는 책이다.

마더 테레사의 《사랑하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과 청화 스님의 《마음》, 소로의 《월든》과
파커 파머의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이 시공을 뛰어넘어 나와 세상 만물이 이어져 있다는 전체성을 일깨운다.
틱낫한 스님의 《삶에서 깨어나기》와 그림책 《나무를 심은 사람》,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가
지금 현재를 사는 것의 소중함에 관한 가르침으로 수렴된다.
저자는 자신의 “영혼을 흔들어 깨운 말씀들이 이 책을 타고 다른 영혼들에게 흘러들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영혼을 깨우는 책읽기》는 깨달음을 위한 책들을 소개하는 ‘책으로 시작하는 마음공부 안내서’이자,
한 사람의 영혼이 깨어나는 여정이 가슴을 울리는 또 한 권의 ‘영혼을 깨우는 책’이다.

“일상에 평화가 깃들어 있다면 그는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삶이 괴로울 때 우리는 자기 내면을 돌아본다. 나는 누구이고 삶은 어디로 가는지 새삼 의문을 품지만
내가 아는 지식을 토대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속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어느 순간 마음이 다스려지는 듯해도 시간이 지나면 또 제자리다.
저자 역시 머리로 하는 생각에 의지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삶을 수십 년간 살아왔다.


십 년 넘게 사회운동에 헌신하면서 합리적인 이성과 논리로 사회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갈등에서 오는 상처, 소통과 감정의 문제는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었다.
절망과 슬픔 속에서 한계에 다다랐을 때 ‘영혼을 깨우는 책’이 처음으로 저자에게 다가왔다.

 

저자는 책 속에서 자신의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운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가르침을 정성들여 골라 정제된 언어로 풀어 전한다.
책 속에서 만난 한 구절이 일상 속 고민의 지점과 놀랍게도 맞닿을 때,
이 책에서 얻은 배움이 저 책으로 이어지며 가슴에 점차 아로새겨질 때,
그 설레고 기쁜 깨우침의 장면들이 저자가 책 속에서 길어 올린 지혜의 말씀과 감동적으로 어우러져 마음공부의 길을 보여준다.
두려움과 망설임에서 확신과 믿음으로, 전환을 불러오다

‘나’를 바꾸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우리는 설령 자신을 바꾸길 원하더라도 막상
‘나’를 바꾸라는 가르침에 직면하면 자기도 모르게 저항한다. 하물며
‘나’를 버리라고 하는, ‘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라는 가르침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


‘영혼을 깨우는 책’은 생각을 멈추라고 한다. 내가 알던 상식과 관념을 버리라고 한다.
‘나’ 자체를 손에서 놓아버리라고 한다. 멀리 특별한 어딘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
‘나’를 주장하지 않고 내려놓은 바로 그 자리에 행복이 있고, 진리가 있고, 나의 참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그 단순하고 명료한 진리 앞에서 우리는 종종 당황하고 겁에 질린다.
그러나 ‘영혼을 깨우는 책’을 계속해서 읽어 나가며 저자의 두려움은 확신으로 바뀌어 간다.

 
한바다, 《마하무드라의 노래》를 읽으며


이 책에서 유장하게 그려내는 깨달음의 이미지들은 나를 설레게도 했고 두렵게도 했다.

‘나’라는 울타리가 다 무너져 커다란 지혜나 자비와 합일됨으로써
세상 모든 것에나 자신을 내어줄 수 있으리라는 비전은 상상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로 이해가 되어야 몸이 움직이는 삶의 습관에 길들여진 초심자로서,
가슴이 열려 저절로 움직이는 방식을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것이 내가 감당하지 못할 상황으로 나를 이끌지는 않을지,
그러다 반쯤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변하지는 않을지 불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음에서 기인한 그 불안이 우습게 여겨지지만 말이다. (85쪽)

 
류시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읽으며


우리의 삶이 강이라면 더는 그대로 살 수 없게 된 막다른 지점이 사막이다.
거기에서 멈추든지 아니면 새로운 지점으로 흘러가기 위해 다른 존재로 전환해야 한다.
소리 지르던 습관을 버려야 하고, 마음속에 일던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의 분별을 멈춰야 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먹고 놀던 습관도 바꿔야 하고 남들을 먼저 섬기는 행동을 익혀야 한다.
…… 성장해야 함을 알면서, 완전히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망설여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영혼을 흔드는 이 시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것이다. (300~301쪽)

육신에서 벗어나, 에고를 넘어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다
그런데 우리가 놓아버려야 하는 ‘나’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를 붙잡고 있을 때의 삶과 ‘나’를 놓아버렸을 때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

‘영혼을 깨우는 책’들에 따르면 ‘나’는 “우리 존재를 한계 짓고 불행과 고통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에고”(71쪽)이며,
“자신을 육신과 동일시하면서 분리되고 한정된 존재로 여기는” ‘거짓자기’다.(169쪽)

이제껏 나인 줄 알고 살아왔던 것이 사실은 진정한 내가 아님을, 참된 내 본질을 자각했을 때
삶이 한순간에 마법처럼 바뀔 수 있음을 ‘영혼을 깨우는 책’은 저마다 다양한 어조로 찬찬히 일러준다.

 
에크하르트 톨레,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읽으며

 

‘저건 못마땅해’, ‘좋아, 그렇게 하고 싶다’ 따위의 감정들에 일관성이 있으며,
이런 생각과 감정을 이어 나가는 독립된 마음의 주인이 내 육신 안에 있다는 믿음은 가짜이고 허구라는 말이다.
허구일 뿐 아니라 매우 골치 아픈 것이 에고이다.
톨레는 에고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늘어놓는 독백이나 대화의 내용들은
대체로 자신을 공격하거나 처벌하는 ‘고문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중단될 줄 모르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일종의 ‘중독’ 혹은 ‘질병’으로 여긴다.
물론 마음은 잘 사용하면 좋은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하는 생각들은 80~90퍼센트가 반복적이고 부질없는 잡념이거나 부정적인 성질을 띠고 있어
결국 자신에게 해로울 뿐이라는 것이다. (74~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