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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의 연가를 읽고,




문득,

 어느해 가을...

 송호근님의 江의 연가를 읽고...

 가을 江을 생각해 본다

 가을 江은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배어 나는 것같음을,

 올 가을

 나는 기억 속의 가을 江을 그려본다.....

 


 

 강(江)에 대해서라면 누구든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등이 굽은 노인이 한 서린 눈으로 바라보는 강 구비에 대하여

 이제 막 사춘기를 통과하는 소년이 수줍게 걷고 싶은 모래톱에 대하여

 그리고 떠나온 마을 앞을 감싸 도는 소박한 이름의 강줄기에 대하여, 누구든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강은 누구에게든지 지나온 삶과 지낼 삶을 아무런 표정없이 비쳐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강을 보러 떠나는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굳이 강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강에 비친 자신의 표정을 보기 위해, 강이 전하는 묵언의 교훈을 듣기 위해 사람들은 떠난다.

 

 

그래서, 강은 설레임이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여심(旅心)이란 대체로 혼자이고 싶은 욕망일 터인데

어느 마을 부근에서 마주친 강이 길동무되어 따라 붙는다면 일부러 찾아 나선 고독이 결코 두렵지만은 않다.

강은 협곡을 건너면서 때로 사나워지고, 쉴 만한 곳에 이르면 고기 떼가 노는 소(沼)를 만든다

.

물줄기가 휘도는 언덕 부근에 자작나무 군집을 허락하고 

낙엽 떨구는 가을나무들에게 봄의 습기를 기약하는 것이다.

강이 설레임인 것은 끊일 듯 이어지는 흐름이 자신의 삶의 여정인 듯 다가오기 때문이다.

강은 바다에 닿아 해산할 때까지 흐름을 멈추지 못한다.

강변에 갖은 풍경을 만들면서도 제 멋에 겨운 그것들의 진화(進化)로부터 힘을 수유받아 다시 흐른다.

 

그래서인지, 문학은 강에 대한 사랑노래, ‘강의 연가(戀歌)’다. 특히 서정인의 ‘강’이 그렇다.

서정인은 장년에 접어든 사람들의 고단한 정서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그의 소설 ‘강’에는 강이 없다. 소설을 읽은 후에야

비로소 독자들은 마음 한가운데 어느 덧 강이 생겨나 흘러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서로 어울리는 게 이상스레 보이는 박씨, 김씨, 이씨가 출발을 기다리는 시골 버스에 타고 있다.

창 밖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진눈깨비가 연상시키는 군입대의 기억이 김씨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것은 군대 기억이 아니라도 좋다.

세 사람은 맨 뒷좌석에서 옆 여인의 가슴을 지그시 어깨로 밀고 잠든 체하는 사내의 일진이 부럽다.

 

버스가 출발하지 않아도 좋다. 이윽고 버스는 출발한다.

황톳길의 풍경은 진눈깨비로 을씨년스럽다.

새마을사업이 한창인 농촌에 근대화연쇄점이 버짐처럼 들어선 거리를 힘겹게 달린다.

몇 개의 군부대가 스치고 농협창고, 파출소, 여인숙이 뒤섞인 정거장에서 그들은 내린다.

소설의 풍경은 그렇게 흘러간다.

세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시골집의 결혼식에 왜 참석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고는, 뒷좌석에 앉았던 그 여인이 총총이 들어가 사라졌던 술집에서 새벽 술을 마신다.

술시중을 들던 그 여인은 여인숙에 잠들었다는 김씨, 늦깎이 대학생이 궁금하다.

여인은 진눈깨비에 지쳐 잠든 대학생(!)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진눈깨비는 어느 덧 하얀 눈발이 되어 길을 덮는다.

마치 무성영화의 장면들처럼 사람들의 얘기가 그렇게 흘러간다.

흐르는 장면 속에 인생은 강으로 인화된다.

 

서정인이 애정을 갖고 그리는 인물은 김씨,

박씨, 이씨가 아닌 여인, 대학생 김씨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술집 작부다.

살아 내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과 덧없음을 보여주는 데에 작부만큼 애절한 인물이 없을 터이다.

작부는 가진 것 없는 젊은 처자가 몸뚱이 하나로 단행하는 생존의 선택이다.

 

타인의 설움이나 한탄을 소리쳐 털어내다가 급기야 자신의 한을 이기지 못해 몸 구석구석에 독버섯을 남기고야 마는 직업.

그래서인지, 작부의 삶을 더욱 푸근히 끌어안는 귀의(歸依)의 무대가 절실하다.

그것이 강이다. 그래서, 여행길에 문득 마주치는 강은 은유 속의 피안(彼岸)이자,

한의 현실적 등가물이 된다. 설레임의 근원인 것이다.

 

그런데, 그 설레임에는 강이 그렇듯 장중한 결말이 함축되어 있다.

 마치 크고 작은 삶의 소재들이 인생의 굵은 궤적을 만들어 놓는 것처럼 말이다.

작고한 시인 박재삼이 ‘친구의 서러운 사랑 얘기를 들으며’

등성이에 올라 보았던 가을 강이 가슴 벅찼던 이유가 그것이다.

 

“제삿날 큰 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진눈깨비 내리는 밤 여인숙에 모여드는 민초들의 삶도 반딧불 같은 빛을 숨기고 있다.

 “저것봐, 저것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강’). 겨울 문턱에서, 가을 강을 한번 보러 가도 좋을 것이다.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