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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페터 한트케 著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

페터 한트케 著

 

 

책소개-----

 

한트케가 스스로 발견한 스승, 폴 세잔
그의 예술적 영감이 된 생트빅투아르산을 찾아서

23세에 발표한 데뷔작 『말벌들』 이후 커다란 센세이션을 몰고 온 희곡 『관객모독』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이래 줄곧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라는 비밀을 자신의 문학의 중심으로 삼아오며 현대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페터 한트케. 2019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세계뿐만 아니라 국내 독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문학적 성취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1978년 한트케는 파리의 주드폼미술관에 걸린 세잔의 작품 「팔짱을 낀 남자」에 깊이 사로잡히며 그림 속 인물을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으로 삼고, 1979년에 『느린 귀환』을 발표한다. 이후 세잔의 예술적 행보에 감화된 그는 특히 화가의 ‘생트빅투아르산’ 연작에 이끌린다. 늘 무지를 두려워하며 스승을 갈망하던 한트케는 비로소 스스로 세잔을 인류의 스승이자 자신의 예술적 스승으로 삼고, 세잔의 회화가 사물을 현실화한 방식을 따라가면서 글쓰기 미학의 깨달음을 얻는다.

한트케는 이 책에서 화가의 ‘현실화’ 과정을 거꾸로 추적한다. 가장 먼저 세잔의 그림을 발견하고, 그림의 주변 환경을 거슬러 화가의 작업 장소인 아틀리에를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그림의 대상인 산으로 간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순차적으로 정돈되어 서술되지는 않는다. 한트케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책 전체에서 사유와 사색의 향기가 진하게 흐른다. 치열한 작가정신이 곳곳에서 번뜩인다. 조심스럽게 독자를 생트빅투아르산으로 인도하다가도 멀어지게 하고, 다시금 뛰어들도록 한다. 그리고 어떤 사물의 선명한 실체는 결국 자신 안에서 인식한 것이며 이렇게 인지한 사물의 형상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음을 역설한다.


목차----


커다란 아치
색채의 언덕
철학자의 고원
늑대의 점프
뽕나무 길
그림들의 그림
차가운 들판
팽이의 언덕
커다란 숲

해설

 

 

著 : 페터 한트케 (Peter Handke )

 

1942년 오스트리아 케른텐 주 그리펜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문화적으로 척박한 벽촌에서 보내며 일찍부터 전쟁과 궁핍을 경험했다. 그라츠 대학교에서 법학 공부를 하다가 4학년 재학 중에 쓴 첫 소설 『말벌들』로 1966년에 등단했다. 그해 미국서 개최된 ‘47그룹’ 회합에 참석한 한트케는 당시 서독 문단을 주도했던 47그룹의 ‘참여문학’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면서 이목을 끌었다.

한국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실험적인 희곡 「관객 모독」도 같은 해에 출간되어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는 내용보다 서술을 우선하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다수의 혹평과 소수의 호평을 받다가 1970년대 들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통적인 서사를 회복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작품이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다. 독일어로 쓰인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1972년에 거장 빔 벤더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1967년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상, 1972년 페터 로제거 문학상, 1973년 실러 상 및 뷔히너 상, 1978년 조르주 사둘 상, 1979년 카프카 상, 1985년 잘츠부르크 문학상 및 프란츠 나블 상, 1987년 오스트리아 국가상 및 브레멘 문학상, 1995년 실러 기념상, 2001년 블라우어 살롱 상, 2004년 시그리드 운세트 상, 2006년 하인리히 하이네 상 등 많은 상을 석권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마침내 2019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최근에 나는 운터스베르크1의 눈 덮인 정상에 서 있었다. 내 머리 바로 위, 거의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공중에 까마귀 한 마리가 바람 속을 활공하고 있었다. 까마귀의 몸통으로 당겨진 발톱의 노란색은, 새의 이상적인 이미지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햇살을 받아 빛으로 일렁이는 날개는 금색이 섞인 갈색이었다. 그리고 하늘의 푸른색. 그 세 가지는 드넓고 편평한 공중에 널찍한 색채의 띠를 만들며 흘러갔고, 그래서 순간 나는 허공에 휘날리는 세 가지 색의 깃발을 본 듯했다. 그것은 주장이 없는 깃발, 오직 색채만의 사물이었다. --- p.14

나는 화가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감사조차 저버리고 있었다. 부속물이라고 오해하기는 했지만 간혹 가다 최소한 시력검사판 역할이라도 해주었고, 되풀이되는 생명과 환상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 적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색상과 모양 자체는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항상 그림으로 그려진 어떤 특별한 대상 자체였다. 대상이 없는 색채와 형태는 너무 무의미했고, 익숙한 일상의 자리에 있는 대상은 너무 흔했다. 여기서 ‘특별한 대상’은 딱 맞는 말은 아니다. 원래는 평범한 물체인데, 이를 화가가 특별한 모습으로 만들었고, 그래서 내가 이것을 비로소 ‘마술적’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 p.19

나는 항상 무지를 궁핍으로 느낀다. 거기에서부터 특별한 목적이 없는 지적 충동이 일었다. 그것은 호응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관념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뭔가 이해할 만한 계기가 하나 주어지면, 그것으로부터 ‘정신의 단초’가 싹튼다. 그렇지 않다면 늘 막연한 갈망 차원에서 그치고 말았던 탐구가 그런 계기를 만남으로써 진지한 결과를 낼 수도 있다. --- p.33

왜 나는 하필이면 쓴다는 권리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불특정한 사랑의 순간에 왔다. 그것이 없으면 당연히 글쓰기도 없게 되는, 그런 순간. 샛길 안쪽 깊숙한 곳에 서 있던 뽕나무 한 그루가(실제로는 먼지투성이 흰 길에 떨어진 붉은 과즙 얼룩이) 내가 최초로 이성적인 기쁨을 생각할 수 있었던 1971년 여름 유고슬라비아의 붉은 뽕나무즙과 신선한 섬광 속에서 합치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시선이? 내 눈동자가? 어두워졌으며, 동시에 모든 형상들이 둥글고 깨끗하게 보였다. 또한 침묵이 있었다. 침묵과 함께 평범한 자아가 순수한 무명으로 변했고, 나는 변화의 충격 속에서, 단순한 무형 이상이었다. 나는 작가가 되었다. --- p.68~69

최종적으로 나는 결국 그것이 ‘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나는 지리학자인 조르거를 이미 나 자신의 내면으로 들여다놓았고, 그러므로 그는 어차피 수많은 시선으로 동행하며 계속 작동하는 중이었다). 나는 ‘발명’하지 말고, 가르침에 따라서, ‘현실화’(개별 경우에는 결국 발명도 그 안에 포함되는)해야만 했다. 또한 내 개인적인 확신은, 이야기 내면의 빛으로서 괴테의 ‘선한 자아’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것은 독자를 밝히고 고양시키며 책을 읽는 동안 우선적으로 신뢰를 불러일으킨다. 그렇지 못한 글은 읽을 가치가 없다.

--- p.97

 

출판사 리뷰-----


예술에 대한 탐색의 열정
세잔에게 바치는 색채의 언어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의
문학적 아름다움의 구축!

한트케가 스스로 발견한 스승, 폴 세잔
그의 예술적 영감이 된 생트빅투아르산을 찾아서

23세에 발표한 데뷔작 『말벌들』 이후 커다란 센세이션을 몰고 온 희곡 『관객모독』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이래 줄곧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라는 비밀을 자신의 문학의 중심으로 삼아오며 현대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페터 한트케. 하지만 그의 이름과 작품은 세계적 명성에 비해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게 다가온다. 그런 그가 2019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세계뿐만 아니라 국내 독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문학적 성취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시, 소설, 희곡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온 한트케이지만 특히 그의 초기 작품들은 여전히 여러 가지 해석을 불러일으키며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중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매우 느슨한 형태의 4부작으로 탄생시킨 ‘느린 귀향’ 프로젝트는 삶과 글쓰기 양면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고 느낀 작가의 존재와 예술의 의미를 분명히 하려는 의도로 떠난 여정을 마치고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오는 과정을 작품으로 남긴 것이다.
여정을 시작할 무렵 한트케는 프랑스 화가 폴 세잔에 매료된다. 1978년 파리의 주드폼미술관에 걸린 세잔의 작품 「팔짱을 낀 남자」에 깊이 사로잡히며 그림 속 인물을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으로 삼고, 1979년에 『느린 귀환』을 발표한다. 이후 세잔의 예술적 행보에 감화된 그는 특히 화가의 ‘생트빅투아르산’ 연작에 이끌린다.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그를 끌어당긴 세잔의 작품을 마주한 한트케는 지금껏 무엇에도 이끌리는 경험이 없던 자신이 이토록 사로잡혔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비한 경험이라고 고백하면서 생트빅투아르산을 직접 보기를 열망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79년 두 번에 걸쳐 생트빅투아르를 찾은 후에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을 완성한다.

“똑같은 사물도 다른 시각에서 보면 엄청나게 흥미롭고 그만큼의 다양성을 갖춘 연구대상으로 변하므로, 나는 지금 고개를 더 오른쪽으로, 그리고 다시 더 왼쪽으로 돌리는 행동만으로도 이 자리를 전혀 떠나지 않은 채 최소 몇 달 동안은 분주할 수 있을 것 같다.”_폴 세잔

대체 생트빅투아르산의 무엇이 이 두 예술가를 매혹했을까. 실제 생트빅투아르는 텅 비고 앙상하며 척박한 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산행 초기 한트케는 실제 산의 모습과 화가가 그린 산의 모습이 다르다는 데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산을 오르면서 세잔이 실제 산을 달리 그린 것이 아니라 더 절묘하게 표현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은 문학적 전환을 갈망하던 한트케에게 대단히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보여지는 것들에 사색이 더해져 탄생하는 예술이야말로 한트케가 탐색하고 열망하던 문학에의 열정이었고, 작가는 세잔의 산을 통해 그 해답을 얻은 것이다.
늘 무지를 두려워하며 스승을 갈망하던 한트케는 비로소 스스로 세잔을 인류의 스승이자 자신의 예술적 스승으로 삼고, 세잔의 회화가 사물을 현실화한 방식을 따라가면서 글쓰기 미학의 깨달음을 얻는다.

사물과 언어의 매개자,
한트케 문학 세계의 뿌리

책에는 물론 생트빅투아르산을 찾은 두 번의 방문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하지만 책을 세잔의 그림에 관한 미술 에세이, 혹은 세잔의 주요 모티프였던 생트빅투아르산을 여행하며 기록한 여행기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책의 형태가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평론가와 연구자들 간의 여러 논의가 있었다. 그리하여 대체로 일치된 의견은, 자전적인 1인칭 화자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그가 작가 자신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고 에세이와 유사한 형식을 일부 갖추고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픽션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한트케 자신은 이 작품을 어느 정도는 매니페스트(표명, 선언)의 성격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한트케는 책에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글쓰기의 방법에 대해, 글쓰기가 어떻게 외부와 내부, 인식된 현실과 보여진 현실, 사물과 언어, 개인과 주변,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독자, 아이디어의 서술과 실현 가능성, 그 두 가지 극 사이에서 연결과 전환의 역할을 하고 조화와 화합을 이룰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예술가는 외부와 내부의 중재자이자, 사물과 언어의 매개자이며,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의 전환을 이루어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책에는 예술에 대한 성취와 문학을 통한 실현이 가로 놓여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트케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과 문학의 아름다운 교차’를 일궈냈다고 볼 수 있다.

한트케는 책에서 화가의 ‘현실화’ 과정을 거꾸로 추적한다. 가장 먼저 세잔의 그림을 발견하고, 그림의 주변 환경을 거슬러 화가의 작업 장소인 아틀리에를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그림의 대상인 산으로 간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순차적으로 정돈되어 서술되지는 않다. 한트케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책 전체에서 사유와 사색의 향기가 진하게 흐른다. 치열한 작가정신이 곳곳에서 번뜩인다. 조심스럽게 독자를 생트빅투아르산으로 인도하다가도 멀어지게 하고, 다시금 뛰어들도록 한다. 그리고 어떤 사물의 선명한 실체는 결국 자신 안에서 인식한 것이며 이렇게 인지한 사물의 형상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음을 역설한다.

페터 한트케 문학의 향취를 살린
14년 만에 전면 개정 출간

“나는 번역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가 예리한 언어로 커다란 아치를 그리며 느리게, 하지만 동시에 논증이나 설명을 생략하고 직접 화살처럼 사물 안으로 꽂히듯 핵심으로 진입하는 특유의 서술 방식, 그것을 통해 아름다움을 구축해나가는 기술이라는 생각을 했다.”_옮긴이의 말에서

2006년에 출간되었다가(당시 출간명 『세잔의 산을 찾아서』) 14년 만에 전면 개정되어 출간하게 된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의 번역은 소설가 배수아가 맡았다. 그는 지금까지 유수의 독일 문학을 소개하는 데 앞장서서 원문의 의미를 수려하고 적확한 한국어로 독자에게 전달해왔다. 한트케의 사색적인 문장과 합치를 이루는 배수아 작가의 번역을 살펴보는 것 역시 이 책을 감상하는 또하나의 즐거움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