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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의 미학

 

 

 

 

불꽃은 우리에게 상상할 것을 강요한다. 불꽃은 인간에 있어서만 하나의 세계다.
불꽃의 몽상가가 불꽃을 향해 말한다면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그는 시인인 것이다.
촛불 앞에서의 몽상은 한 폭의 그림의 모양을 이룬다.
불꽃은 우리들을 깨어 있게 하는 저 몽상의 의식 속에 붙들어 놓는다.
사람이 불 앞에서는 잠을 자지만 촛불의 불꽃 앞에서는 잠을 자지 않는다.
불꽃은 젖어 있는 불이다." "불꽃은 위쪽을 향해서 흐르는 모래 시계다.
불꽃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아편을 먹는다.
그리고 불꽃은 아무 말 없이 죽는다. 그것은 잠들면서 죽는다

-----가스통 바슐라르------

 

인간이란 고독 속에서 몽상하고 있어도 불이 켜져 있는 촛불 앞에서라면
그렇게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 만큼 처음부터 친구를 필요로 한다

 

------ 리히텐베르크-----

 

촛불은 제 몸을 태워 빛을 발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흔히 확고한 의지를 담고 주위를 밝게 하려는 행위를 촛불에 비유하곤 한다.

또 불가에서도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품 가운데 초는 향과 꽃과 더불어

가장 뜻 깊은 공양물로 꼽히고 있다.

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려는 숭고한 희생 정신,

그것이 바로 불가에서 말하는 덕목 가운데 으뜸인 보살도의 정신인 것이다.

촛불 하면 생각나는 구라파의 철인이 있다. 바로 가스통 바슐라르이다.

불란서의 철학자이며 문학가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저서 불의 정신 분석 촛불의 미학 등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저작이다.

그는 이 우주를 물, 불, 공기, 흙 등 4원소의 개념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정신적 요소에 의해 그것들이 결합한 것이 생명체라고 설파하는 등

그의 사유 방식과 논리에는 불교적 요소가 많이 눈에 띈다.

그의 논법 가운데 필자가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것은 명상이다.

그는 우주의 실체를 포함해 모든 것을 인간의 명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그는 한 자루의 촛불에도 우주의 진리, 생명의 원천이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

촛불이 제 몸을 태우며 발산하는 세 가지 불꽃에는 지순해지려는 인간 이성의 의지,

높이 오르려는 정순한 고요, 불순한 것을 태워없애 깨끗한 곳으로 다가가려는 생명의 본래적 바람,

촛농은 녹지만 불꽃으로 살아남는 되돌림의 법칙,

이런 것들이 그가 불꽃을 숭배하면서 그 속에서 깨달은 이치라는 것이다.

그는 촛불이 지순한 정신으로 끝없이 자신을 태우듯 인간도 가장 정순한 마음으로 명상에 잠겨

염원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고 설파한다.

이는 또 자신의 경험담이기도 하리라.
부처님이 세상 만유의 진리를 깨치신 것도 바로 이 선정()을 통해서였다.

7년 고행 끝에 부처님은 육신을 괴롭히는 고행이 바른 수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보리수나무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으셔서 고요한 삼매()에 드셨다.

이 같은 삼매 속에서 어느 날 석존은 샛별이 떠오르는 광경을 보면서 홀연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는 인연 연기의 진리를 깨달으셨던 것이다.
그날 이후 무수한 현인() 선자()들이 부처님과 똑같은 선정 삼매의 방법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보겠다고 나서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바슐라르도 깨달은 선자의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석존을 깨달음으로 인도했던 샛별이나 바슐라르에게 해안을 던져준 촛불은

모두 어둠을 밝혀 주는 빛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런데 세상은 원래 어둠이었다. 얼마 전  늦은 밤 글을 쓰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을 생각으로

촛불을 켜 놓고 그 불꽃을 바라보며 석존과 바슐라르를 생각하다 문득 깨달은 사실이다.

 깨달았다기보다는 홀연히 보여졌다는 표현이 바르리라.

우주의 근원, 정신, 이성, 영혼, 운명, 법칙, 그리고 진리라고 불리우는

모든 비물질적인 요소들이 한데 모여 있는 그곳이 필자의 눈에 비쳐졌던 것이다.

그곳은 마치 콜 타르 석탄을 건류할 때 생기는 흑색의 끈끈한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듯이

액체도 아니고 고체도 아닌 끈적끈적하다고 느껴지는 물질이 가득 차있는 곳이었다.

세상의 모든 비물질적인 요소가 이곳에 모여 있고 현실 세계의 일은 이곳의 반영이라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말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몸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그곳이 이 지구의 상공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하에 있는 것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차원을 달리 하는 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정신의 에센스도 그곳에 한데 어울려 있다고 했다.

평소에 우리 범인들은 우리의 정신세계가 그곳과 교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데,

이는 정신세계가 정순하지 못해서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정순한 명상으로 정신세계를 가꿀 수 있다면

이곳과 직접 교류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서,

그 동안 바슐라르의 말에 가졌던 한 가닥 의문이 씻은 듯이 풀려지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간절히 원하고 바랄 때는 그의 정신이 맑아지고 높아지는데

그 극단이 이곳 근본 세계에까지 이르는 일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깨달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 생각은 우리나라의 통일 문제에 닿았다. 그때 쓰고 있던 글이 통일에 관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나 한사람이라도 진정 지순한 마음으로 통일을 염원하고 이를 간구한다면

통일은 기필코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서는 것이었다.

인간이 이루고 있는 사회 집단인 국가에도 분명히 운명이란 것이 있다.

 한사람이라도 정순하게 나라를 걱정하고 잘되도록 염원한다면

그의 정신이 근본정신에까지 이르고,

그 속에 묻혀 있는 나라의 운명이란 넓은 에센스가 서서히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

바로 한 사람의 명상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바슐라르의 논리에 대한 설명이자 실체였던 것이다.

이같이 깨달았을 때 몸에서는 엄청난 화학 변화가 순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T 임파구가 형성되어 엔도르핀이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불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