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Book./冊.冊.冊

-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 `神曲`(La Divina Commedia)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神曲'(La Divina Commedia)      

해설

"신곡"은 이탈리아의 시성 단테가 20년 간 모국으로부터 추방되어
방랑하면서 완성한 신학적 서사시이다.
전곡 14,233행이 100가로 나뉘고 다시 지옥편 34가 연옥편 33가 천국편 33가로 구성된 3부작이다.
그런데 33이라는 수는 그리스도가 속죄에 오른 연령을 의미하는 수이며
또한 100은 완전수 10의 제곱수로서 '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10이라는 숫자는 당시의 3을 기초로 한 완전수를 상징하는 동시에 삼위일체의 상징이라고도 한다.

"신곡"은 전편이 일시에 발표된 것이 아니다.
지옥편은 1300년-1308년에 연옥편은 1313년에 완성되고
천국편은 그의 사후 유고로서 세상에 나왔다.

"신곡"의 제목은 단테가 Commedia.라고 일컬었고
16세기 중엽 이후 후세 사람들이 여기에 Divina.를 첨가하여
초인적인 우월성으로 신성한 주제를 다루었다는 뜻을 덧붙였다.

작자가 제목을 Commedia.라고 붙인 것은 시의 내용이
고뇌와 증오로 시작하여 미와 희망으로 끝난다는 것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내용의 주조를 이루는 것은 인간의 영혼이 죄악의 생활로부터
참회와 정화를 거쳐 천국에 도달하는 인생의 여로를 그린 아름답고 숭고한 환상의 시이다.

"신곡" 속에는 예술가로서의 단테의 의식과 의지와 감정의 결정체가 나타나 있다.
"신곡"은 단테다.
그의 전생애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쓴 "신생"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문학사적으로 유명한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은
이 위대한 작품의 뿌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단테로 하여금 위대한 시인이 되게 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본 것은 9세 때이며
이 소녀가 8세 되던 어느 따뜻한 봄날 꽃의 도시 플로렌스에서였다.
그 후 단테는 만나보지 못한 채 9년 동안 이름조차 모르는 이 소녀를 간절하게 사모하였다.
그 후 만9년이 지나서야 같은 봄날에 같은 장소인
아루노 강의 베티오 다리에서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우연히 만났다.
이 재회의 장면은 영국 화가 포리테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그 때 이 소녀는 단테에게 정답게 인사를 했다.
이 일이야말로 단테에게 천상의 세계를 계시하고 서정적 회고록인
"신생"을 쓰게 했던 시적 해후였던 것이다.
그러나 단테는 사랑을 고백하지 않고 남몰래 청순한 사랑을 품은 채
조용히 집에 올라와 타오르는 연모의 마음으로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그 소녀의 꿈을 꾸었다.
단테는 꿈에서 깨어나 소네트를 지었는데 이것이 그의 최초의 작품이 되었다.

그 당시로서는 새로운 사의 스타일인 신미체의 시였으므로
보수적인 사람들에게서는 악평을 받았으나 선배 시인인 구아도 카발칸티는
대단히 감동하여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친교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다시 재회하였을 때
베아트리체는 벌써 어떤 은행가의 부인이 되어 있었으며
1290년 6월 9일 단테가 25세가 되던 해에 베아트리체는 죽고 말았다.
단테는 그녀가 은행가인 귀족과 결혼한 것을 알고 몹시 슬퍼하기는 했지만
질투와 같은 비천한 감정은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속 깊이 그리워하고 동경하게 되었으며
그녀가 죽은 후 그의 사랑은 승화되어 천상적인 사랑이 되었고
그녀의 자태는 단테의 가슴 속 깊이 남아 영원한 연인으로서 천상적인 이상이 되었다.

"그녀는 자연이 낳은 아름다움의 극치이며 그를 보는 사람은
마음이 온화해져서 모든 원한이 녹아 버리고 오만과 분노도 사라지게 된다"고
단테는 그 여인을 칭송하였다.
그 후 단테는 다른 여인에게로 마음을 돌리려 했으나
베아트리체의 환영을 보고 참회하여 영의 순례자로서 천계의 그녀를 찬양하게 되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절망과 빈곤과 암흑에 끊임없는 위안의 원천이 되었으며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찬양되어 단테로 하여금 예술의 문을 통해 종교의 본질에 이르게 하였다.

"신곡"은 세계 문학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당시 이탈리아 문학은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이 상례였는데
이 작품은 당시 경시되던 투스카니 어로 쓰여졌고 당시의 사회적 사건에 대한
비평이 들어 있으며 중세적 우주관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단테는 이 투스카니 어를 사용하여 문학적인 언어를 창조했는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고전 이탈리아가 된 것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자료가 된 것은 성서와 그리스 로마 신화 및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이며 신 플라톤 파의 우주론 토레미의 천문학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등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곡"은 인간의 예술품이라기보다는 미지의 세계로부터 전해진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줄 뿐 아니라 후세 사람들의 비극적 시에 원천이 되었다.

"신곡"은 인간의 상상력이 낳은 최고의 창작품의 하나이며
세계문학사나 인류 문학사의 불후의 금자탑이다.
러스킨은 "신곡"의 어떤 부분의 시에 대해 사람의 힘으로 미치지 못할 기적이라고 말했고
괴테도 이 시의 어떤 부분에 대하여 "인간이 쓴 시 가운데 최고의 것"이라고 감탄하였다.
이와 같이 "신곡"에 의하여 이탈리아 국민 문학은 불후의 명성을 확립했고
단테 자신도 국민 문학의 스승이 되었다.

칼라일은 "유럽은 많은 것을 만들었다.
거대한 도시 위대한 제국 수많은 백과 사전 많은 신조 다양한 의견 각종의 실천 등을
그러나 단테의 사상에 비견될 만한 것은 극히 적을 것이다"고 단언했으며
헤겔 쇼펜하우어 쉴링 등의 철학자들은 일생 동안 이 시의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곡"이 단테의 환상이라고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작자 자신의 고뇌와 사랑과 열망의 표현으로서 그의 인생관 종교관 우주관
사회 비평의 집대성이며 역사와 문학상으로는 물론 철학상으로도 의미가 큰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중세 사상의 총괄이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독교 신학
스콜라 철학의 심오함 신비주의자의 정신적 비약을 볼 수 있어
문예 부흥의 선구로서 숭고한 예술의 전당을 이루고 있다.
그 속에 담겨진 지식의 방대함과 깊이는 중세 백과 사전과 같은 느낌도 준다.
여러 세계 문학 작품 중에서도 그 사상의 심원함이나 구상의 웅대함
종교적 열정과 예술적 장엄함에 있어서
이 서사시와 비교될 만한 것은 밀턴의 "실낙원" 외에는 없다고 한다.
"신곡"은 인쇄술이 아직 발달되기 이전에 이미 600권의 사본이 있었으며
그 후 판본이 300권 외국어 번역이 300종 이상이 된다고 한다.

'- Book. > 冊.冊.冊' 카테고리의 다른 글

- Book & Cafe  (0) 2008.02.02
-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0) 2007.12.02
- 촛불의 미학  (0) 2007.11.20
- 몰입의 법칙  (0) 2007.11.20
- 책읽기의 왕도를 아십니까 ?〈호모 부커스>  (0) 2007.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