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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ic. /classic.II

- Masters of Classical Music (클래식 음악의 거장들)

 

 

 

 

 

 

 

 

 

클래식 음악의 거장들 (Masters of Classical Music)
20곡의 가장 뛰어난 관현악 작품들을 유명악단과 지휘자들이 함께 연주하며 작품분석을

한글자막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 가이드 다큐멘터리

 

 [작품소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초연했을 때 왜 거친 싸움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가? 슈베르트는 왜 그의 유명한 B단조 교향곡 “미완성”을 결코 완성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뒤에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리고 하이든은 그의 놀람 교향곡에서 어떤 “서프라이즈”를 생각했을까?

이러한 유명한 클래식 음악에 대한 많은 흥미로운 의문들에 대한 답을 다큐멘터리 시리즈 “클래식 음악의 거장들”에서 얻을 것이다. 명성을 얻고 있는 전문가들이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심도있게 20개의 가장 뛰어난 관현악 작품들을 이야기하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와 관현악단들이 연주한다. 초보자와 실력자 등 모든 클래식 애호가들의 “필청” 음반이다.

“클래식 음악의 거장들”은 유익하면서 즐거움을 주는 시청각 콘서트 가이드로,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20곡의 관현악 작품을 분석한다. 다큐멘터리 안에는 악보 단편들이 더욱 쉽게 음악을 감상하고 작품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감상자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작품의 탄생지를 경험하고, 작품에 대한 개요를 들음으로써 작곡가의 삶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각 20개의 에피소드들은 각 작품의 탄생과 음악적 구조에 대한 유익한 설명을 제공한다. 뛰어난 연주자들과 지휘자들, 그리고 음악학자들이 각 작품에 대한 전문가적 견해를 제공하여 여러분을 안내한다.

영화와 같은 콘서트 가이드에서 최고의 음악적 해석을 들을 수 있다. 음악회 실황은 다니엘 바렌보임, 클라우디오 아바도, 피에르 불레즈, 마리스 얀손스, 마르타 아르헤리치, 길 샤함, 베를린 필하모닉,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등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들과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관현악단들이 대거 등장한다.

[참여한 지휘자]
*Conductors: Claudio Abbado | Daniel Barenboim | Pierre Boulez | Semyon Bychkov | Riccardo Chailly | Hartmut Haenchen | Bernard Haitink | Mariss Jansons | Kurt Masur | Giuseppe Sinopoli | Gottfried von der Goltz


[포맷]
*Item Number: 2060854
*UPC Code: 880242608543
*Running Time: 600 mins
*TV Format: 16:9 - NTSC
*Sound: PCM Stereo
*Subtitles: English, Deutsch, Francais, Espanol, Korean, 中文
*Region Code: 0 (worldwide)
*Booklet: English, Deutsch
*Produced by: Eine Co-Edition von EuroArts Music International und CLASSICA. ⓒ 2007 EuroArts Music International. Artwork & Editorial ⓒ2015 EuroArts Music International

[수록곡]
DISC 1
1 Bach’s Brandenburg Concertos,
Feiburger Barockorchester, Gottfried von der Goltz
2 Mozart’s Symphony No. 41,
C.P.E. Bach Chamber Orchestra, Hartmut Haenchen
3 Haydn’s Symphony No. 94 “Surprise”,
Berliner Philharmoniker, Mariss Jansons
4 Beethoven’s Symphony No. 5,
Berliner Philharmoniker, Claudio Abbado
5 Beethoven’s Symphony No. 9,
Berliner Philharmoniker, Claudio Abbado

DISC 2
1.Schubert’s Symphony 8 “Unfinished”,
Berliner Philharmoniker, Daniel Barenboim
2.Discovering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Berliner Philharmoniker, Mariss Jansons, Wulf Konold host
3.Mendelssohn-Bartholdy’s Violin Concerto in E-minor,
Gewandhausorchester, Kurt Masur
4.Schumann’s Piano Concerto, Gewandhausorchester
L, Riccardo Chailly, Martha Argerich piano
5. Brahms’ Violin Concerto,
Berliner Philharmoniker, Claudio Abbado, Gil Shaham

DISC 3
1. Bruckner’s Symphony No. 8,
Wiener Philharmoniker, Pierre Boulez
2. Tchaikovsky’s Symphony No. 5,
Berliner Philharmoniker, Claudio Abbado
3. Dvo?ak’s Symphony No. 9,
Berliner Philharmoniker, Claudio Abbado
4. Debussy’s La Mer,
Chicago Symphony Orchestra, Daniel Barenboim
5. Mahler’s Symphony No. 5,
Lucerne Festival Orchestra, Claudio Abbado

DISC 4
1. Mahler’s Das Lied von der Erde,
WDR Sinfonieorchester Koln, Semyon Bychkov
2. Stravinsky’s Le Sacre du Printemps,
Berliner Philharmoniker, Bernard Haitink
3. Strauss’ Eine Alpensinfonie,
Sachsische Staatskapelle, Giuseppe Sinopoli
4. Ravel’s Bolero,
Berliner Philharmoniker, Daniel Barenboim
5. Bartok’s Concerto for Orchestra,
Berliner Philharmoniker, Pierre Boulez

 

지휘 : Bernard Haitink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1929년 3월 4일, 네덜란드

네덜란드의 지휘자. 예리하고 뛰어난 음악분석으로 높이 평가되며, 특히 관현악곡 분야에서는 완벽한 작품연구로 깊은 감동을 준다는 평을 듣는다. 그가 지휘한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와 요제프 A.브루크너(Josef Anton Bruckner)의 교향곡 전집은 최고의 명연주로 꼽힌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음악공부를 시작했으며, 암스테르담음악원에 입학한 후에는 바이올린 이외에 지휘도 함께 사사받았다. 음악원을 졸업한 후 네덜란드방송관현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입단, 오케스트라에서 생활하면서 한편으로는 페르디난트 라이트너(Ferdinand Leitner)에게 지휘법을 사사받아 지휘자로서의 데뷔를 원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1955년 네덜란드방송관현악단의 부지휘자로 발탁되었고, 2년 후인 1957년에는 수석지휘자가 되었다. 암스테르담콘세르트헤보우관현악단과는 1956년 루이지 케루비니(Luigi Cherubini)의 《레퀴엠 Requiem》 연주회에서 객원지휘를 맡으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고, 1961년에는 오이겐 요훔(Eugen Jochum)과 공동으로 수석지휘자가 되었다. 1964년 요훔이 사망한 후에는 단독으로 지휘를 맡았다.

이후 런던필하모니관현악단과도 인연을 맺어 1967년부터 1979년까지 수석지휘자와 예술고문직을 겸임했으며, 이때 그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1970년대 초에는 오페라에도 영역을 넓혀 글라인드본 오페라극장의 음악제에서 매년 객원지휘했고, 1977년에는 런던의 코번트가든왕립오페라극장에도 진출했다.

예리하고 뛰어난 음악분석으로 높이 평가되며, 특히 관현악곡 분야에서는 완벽한 작품연구로 깊은 감동을 준다는 평을 듣는다. 그를 두고 독특한 매력이 없다고 말하는 비평가도 있지만, 그가 녹음한 암스테르담콘세르트헤보우관현악단과 런던필하모니관현악단의 음반은 때로는 오케스트라라고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같은 음색을 내고 있어 지휘력을 실감할 수 있다.

그가 지휘한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와 요제프 A.브루크너(Josef Anton Bruckner)의 교향곡 전집은 최고의 명연주로 꼽히며, 또한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Claudio Arrau)와 협연한 암스테르담콘세르트헤보우관현악단의 《피아노협주곡 제5번(황제)》은 힘과 감수성이 넘쳐흐르는 명반으로 일컬어진다.

말러, 브루크너, 차이콥스키 등 후기낭만파 작곡가들의 작품을 지휘하며 경륜을 쌓았지만 후기에는 F.하이든(Franz Haydn), 볼프강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에서 현대 독일작곡가 오토 케팅(Otto Ketting)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레퍼토리에서 권위있는 해석가로 부상했다. 1991년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상을 수상했다.

 

지휘 : Kurt Masur (쿠르트 마주어)

 쿠르트 마주어는 독일의 지휘자이다.1927년 출생 

그는 특히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정평이 나있다

1958 ~ 1960 메클렌부르크 국립 극장 음악감독,1960 ~ 1964 베를린 코미셔오퍼 음악감독,

1967 ~ 1972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1997 ~ 1996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지휘자

1991 ~ 2002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독일 라이프치히국립음악대학교 교수

2000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2002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

 

독일의 슐레젠의 부제크에서 태어났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브레슬라우(현재 브로츨라프)의 국민음악학교에서 피아노와 첼로를 배우고,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는 지휘법, 피아노, 작곡 등을 배웠는데, 그때 본가르츠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다.
음악원을 졸업한 1948년부터 할레 주립극장에 연습 지휘자로 들어갔으며, 후에 정지휘자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1951년에는 에르푸르트 시립극장의 제1지휘자로, 1953년에는 라이프치히 시립극장의 제1지휘자로 취임하였다. 그리고 1955년부터는 은사 본가르츠의 추천으로 드레스덴 필하모니에 1958년까지 머물렀고, 그로부터 주베린의 메크렌부르크 국립극장의 음악 총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1960년에는 저명한 발터 페르젠슈타인의 요청으로 베를린의 코미셰오퍼에 음악 감독으로 옮겼다. 그리고 1964년 본가르츠의 후임으로서 드레스덴 필하모니의 지휘자로 다시 취임하였고, 1967년에는 수석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 또한 1972년까지 수석 상임 지휘자로 있으면서 1970년부터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지휘자도 겸임하게 되었다. 1972년부터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전임이 되고, 음악 감독 겸 수석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
마주어는 동독의 예술 아카데미(예술원)의 회원이고, 또 국가로부터 여러 상을 받고 있다. 그리고 라이프치히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또는 단신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그는 연주 여행을 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유명도, 많은 수의 음반 등으로 동독을 대표하는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마주어는 레코드만으로 추측하는 것보다는 레퍼토리가 훨씬 넓은 지휘자인데, 독일 것 외에 러시아 소련의 작품이나 동독의 현대 음악도 취급하고 있다.
그의 음악 형식의 큰 요인으로 되어 있는 것은 그의 적극성이다. 의욕적으로 국외에 연주 여행에 나가서는 국제적인 센스를 갖추고, 그것을 반영시킨다. 그래서 마주어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라이프치히의 음악 전통에 침잠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앞으로의 지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그 양적인 중량감이나 서정성 등에서 엿볼 수가 있다.
레코드는 절반 이상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을 지휘한 것이었는데, 그중에서는 슈만의 [교향곡] 전4곡(샬프라텐),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9번](덴온), 멘델스존의 [교향곡 No.4(이탈리아)](오이로디스크) 등이 대표적이다.

마주어의 이야기를 더하자면....

 뉴욕필 2002년 서울공연땐 ‘붉은 악마’ 티셔츠 입고 앙코르 연주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흔히 ‘콘서트홀의 왕’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20세기 말∼21세기 초 세계사적 현장에서 더욱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한 지휘자가 있다. 19일 미국 코네티컷 주 그리니치에서 향년 88세로 숨진 쿠르트 마주어.
1927년 독일 브리크(현재 폴란드 브제크)에서 태어난 마주어는 환갑을 넘긴 1989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권의 ‘복 많은 마에스트로’였을 뿐이었다. 동독 최고 지도자 에리히 호네커의 총애를 받으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1989년 10월 동독 민주화의 분출점이 된 라이프치히 시위가 발생하자 마주어는 눈부신 정치력을 발휘한다. 시위대가 경찰에 쫓기는 것을 목도하고 수백 명의 시위자를 게반트하우스로 피신시킨 뒤 평화 시위를 보장하는 협상을 조율해 냈다. 이를 토대로 시위 인파는 최대 12만 명으로 불어났고 동독 전역으로 확산된 민주화 시위 끝에 베를린장벽이 붕괴한다. 이로 인해 한때 통일 독일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그는 1996년 26년간 이끌던 게반트하우스를 떠나 뉴욕 필로 옮겨갔다. 
거기서 그는 9·11테러라는 또 다른 세계사적 현장을 목도한다. 그 아흐레 뒤인 2001년 9월 20일 마주어는 뉴욕 필을 이끌고 전국에 생방송된 희생자 추모 음악회를 열었다. 그가 이때 지휘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마주어 음악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평했다. 2002년 ‘아메리카 레코드 가이드’는 “쿠르트 마주어는 누구도 정복할 수 없던 뉴욕 필을 길들여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구축했다”고 선언했다.

그의 존재감은 2002년 월드컵에서도 빛을 발했다. 뉴욕 필을 이끌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말러 교향곡 1번 공연을 마친 그는 단원들과 ‘붉은 악마’ 티셔츠로 갈아입고 앙코르 곡

을 연주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지휘 : Mariss Jansons (마리스 얀손스)

 라트비아의 지휘자로 러시아 출신의 대표적인 지휘자 중 한사람이다. 오슬로필하모니관현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있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빈필하모니관현악단, 뉴욕필하모닉 등의 유수 관현악단을 지휘했다.

구소련 출신의 대표적인 지휘자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된다. 1943년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저명한 지휘자 아르비드 얀손스(Arvid Jansons)의 아들로 태어나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바이올린·피아노·지휘를 공부했다.

1969년 빈에서 한스 슈바로프스키(Hans Swarowsky)에게, 잘츠부르크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에게 배웠으며, 2년 뒤 베를린에서 개최된 국제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재단 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1979년부터 오슬로필하모니관현악단(Oslo Philharmonic Orchestra)의 음악감독으로 있으면서 유럽 각지와 미국 및 일본을 순회연주했고, 훌륭한 리코딩을 통해 이 악단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드높였다.

1985~1997년 상트페테르부르크필하모니관현악단(St.Petersburg Philharmonic Orchestra)의 수석지휘자로서 유럽·북아메리카·일본 등지를 순회연주했으며, 1992~1998년 런던필하모니관현악단의 수석 객원지휘자를 지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뉴욕필하모닉, 클리블랜드관현악단, 필라델피아관현악단, 시카고·보스턴·토론토 등의 교향악단 등을 두루 지휘했다. 유럽에서도 베를린필하모니관현악단·빈필하모니관현악단·암스테르담콘세르트헤보우관현악단 등을 지휘했으며 잘츠부르크음악제에도 해마다 참석하고 있다.

1995년 노르웨이의 국왕 하랄 5세(Harald V)로부터 오슬로필하모니관현악단을 훌륭하게 이끈 공로로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훈장을 받았으며, 피츠버그의 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98년 잡지《피츠버그 Pittsburgh》에서 제정한 해리 예술상(Harry Award)을 받았다. 1999년에는 왕립음악원의 명예회원으로 선임되기도했다

 지휘 : Pierre Boulez (피에르 불레즈) 현대음악

 프랑스의 지휘자, 작곡가.
실험적 현대음악 작곡과 연주, 연구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현대음악과 음향을 연구하는 기구 IRCAM(국립 음악 음향 연구소, Institut de recherche et coordination acoustique/musique)와 현대음악 연주 단체인 앵테르콩텅포랭 앙상블(Ensemble intercontemporain)을 창설하였다.
불레즈가 쓴 작품은 메시앙과 당시 음악계 경향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쇤베르크가 제시한 '음렬(Serie)'을 기초로 한 '음렬주의(Musique serielle)' 기법을 사용하였고, 피아노 소나타 3번부터는 우연성 음악에도 접근하였다.
지휘자로서는 자신의 작곡 활동에 영감을 불어넣는 작곡가들을 즐겨 연주했다.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제 2비엔나 학파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리게티, 루치아노 베리오와 같은 작곡가들이 이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2비엔나 학파의 안톤 베베른은 전작을 두 번이나 녹음하였다. 라벨, 바르톡, 바레즈, 말러, 브루크너의 작품 지휘가 특히 유명하다.
음악 외에도 현대 예술에 큰 관심을 가진 불레즈는 피나 바우쉬(Pina Bausch), 모리스 베자르(Maurice Bejart)와 같은 현대무용 안무가나 락 스타인 프랑크 자파(Frank Zappa)와 공동 작업을 하였다.

 

지휘 : Riccardo Chailly (리카르도 샤이)

 

리카르도 샤이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밀라노 음악원에서 프랑코 카리치오로를 사사하여 작곡의 디플로마를 얻은 다음, 페루자에서 피에로 과리아노, 시에나의 키지 음악원에서 프랑코 페라라와 같은 명교사를 사사했다. 1968년, 15세 때 클라우디오 시모네에게 인정을 받아 파도바에서 이 솔리스티 베네티를 지휘하여 데뷔했고, 2년 뒤에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추천으로 밀라노 스칼라 극장의 부지휘자로 발탁되었다. 1972년 키지 음악원을 졸업한 샤이는 밀라노의 테아트로 누오보에서 마스네의 [베르테르]를 공연하여 오페라 지휘자로 데뷔했다.
1974년에는 미국으로 진출, 시카코 리릭 오페라에서 [나비 부인]을 지휘했고, 1977년 시즌에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오프닝에서 [투란도트]를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군도]를 지휘, 국제적인 주목을 끌게 된다. 더욱이 1982년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데뷔했다. 그는 이미 런던의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 함부르크의 슈타츠오퍼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오페라 지휘자로서는 제일 젊으면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는 주인공이 되었다. 다만 콘서트의 지휘 방면에는 아직도 충분한 캐리어를 쌓았다고 할 수 없지만 런던 교향악단이나 베를린 필하모니아, 뮌헨 필하모니, 로열 필하모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니를 지휘, 차곡차곡 캐리어를 쌓고 있다. 1982년 시즌부터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에 취임하였다.
1986년에는 볼로냐 시립 오페라 극장 음악 감독으로도 취임했고, 콘서트와 오페라의 양쪽으로 자기의 본거지를 가질 수 있게 된 샤이는 점점 활약을 넓히고 있다. 또한 1988년부터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관현악단 수석 지휘자도 겸하게 되었다. 그 동안 1984년에는 로열 필하모니와 함께 한국에 와서 세종문화회관에서 지휘했다.

샤이는 위와 같은 경력에 비추어 보더라도 연령적으로는 아직도 시작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수적으로는 적지만 시중에 팔리고 있는 레코드를 듣게 되면 소위 네거티브적인 의미의 젊음은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마스네의 [베르테르](그라모폰)에서는 도밍고, 오브라스초바와 같은 베테랑 가수를 구사하여 실로 전체를 멀리 내다보는 안정된 음악을 이끌어 낸 솜씨는 실로 경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멘델스존의 [교항곡 제2번(찬가)][교향곡 제3번(스코틀랜드)](필립스)에서도 다분히 젊음을 느낄 수가 있지만, 스케일의 크기를 본다면 도저히 20대의 젊은이의 음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특히 [찬가]의 경우 코러스의 컨트롤, 오케스트라와 솔로의 퍼스펙티브 등은 숙달된 기량이라고 표현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많다고 본다. 역시 샤이가 오페라의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익혔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이만큼 흥미롭게 곡을 들려 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라 하겠다. 샤이는 21세기의 1장이란 라이센스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재라고 하겠다

 

지휘 : Claudio Abbado (클라우디오 아바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음악원에서 지휘, 피아노, 작곡을 배웠다. 이 음악원을 졸업한 다음 빈에서 한스 스바로프스키에게 지휘를 배웠다. 1958년에 미국의 탱글우드에서 쿠세비츠키 상(賞)을 받았다. 1960년에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열린 갤러콘서트에서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 데뷔했다. 1963년에 뉴욕에서 열린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65년 8월 14일에, 빈 필하모니를 지휘하여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데뷔했다. 그 때의 작품은 말러의 [교향곡 제2번]이었다. 1967년에 처음으로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서 시즌 최초의 공연을 지휘했다. 작품은 벨레니의 오페라 [카풀레티와 몬테키]였고, 1968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랴의 이발사]를 지휘했다. 그 해에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1970년에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를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하였다. 이 작품은 그 뒤에 런던의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이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도 지휘하였다. 1971년에 빈 필하모니의 수석 지휘자로 지명되었다. 뮌헨 음악제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베르디의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를 지휘하였다. 1972년에 베를린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첫날을 지휘하였다. 이해에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올림픽 기간 동안 뮌헨에서 스칼라 극장의 오케스트라와 코러스를 지휘하여 베르디의 [레퀴엠]과 오페라 [아이다]를 연주한 것도 1972년의 일이다. 1973년에 빈의 모차르트 협회에서 모차르트 메달을 그에게 주었다. 이해에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및 필라델피아 관현악단과 함께 미국을 연주 여행하였고, 빈 필하모니와 함께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중국도 연주 여행하였다. 이때가 아바도의 첫 한국 방문이었다. 더욱이 이 해에는 런던교향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1974년에는 아바도로서는 최초의 모차르트의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을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바도는 착착 그 활동의 무대를 넓혀 온 셈인데 그 활동 무대 확대 방식은 용의주도하였다. 이것은 레퍼토리의 선택 방식에서도 볼 수 있다. 이제까지(1981년 봄) 아바도는 이탈리아의 지휘자이고 이탈리아 오페라의 메카로 이름난 스칼라 극장의 음악 감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푸치니에 의해 대표되는 베르디 이후의, 일반적으로 베리스모 오페라라고 불리는 오페라를 조심성 있게 피해 왔다. 한편으로 프로코피예프나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표시하고, 더욱 루이지 노노의 신작 초연을 종종 하기도 했다. 이러한 것으로부터 아바도의, 굳이 말한다면 지성파(知性派)라고 할 수도 있는 지휘자로서의 본연의 자세가 떠오를 것이 틀림없다. 사실 아바도의 연주는 열기에 가득 찼다든가 또는 정열적이라든가 하는 형용이 걸맞지 않으며, 오히려 지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고 하겠다. 그의 연주는 언제나 명쾌하고, 조금의 애매모호함도 없으며, 그 작품의 양식적인 아름다움을 뚜렷이 떠오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휘자로서는 아직도 젊다고 할 수 있는 아바도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마 그 정교하고 치밀함을 잃지 않으면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풍부한 표현일 것이다. 이제까지의 아바도는 문자 그대로의 수재 코스를 걸어 왔고 충분한 성과를 올렸다. 1989년 정식 상임 지휘자가 없는 빈 필하모니의 준상임 지휘자로 있었으며, 1989년 카라얀의 사망으로 그의 휘하였던 베를린 필의 제5대 음악 감독으로 취임해 세계적인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휘 : Daniel Barenboim (다니엘 바렌보임) 피아노 지휘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은 194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0년 8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식적으로 데뷔 연주회를 가지며 신동 아티스트로 유명세를 떨쳤다. 1952년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이고르 마르케비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나디아 불랑제 등을 사사했다. 1965년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본격적인 지휘자로 데뷔했으며, 1981년 이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반지> <파르지팔> 등을 지휘하며 대표적인 바그너 지휘자로 급부상했다. 1991년부터 15년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또한 1992년부터 도이치 슈타츠오퍼 베를린의 음악감독 겸 이 극장의 상주 악단인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창단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현재 UN 평화대사로 활동 중이다.

 

지휘 : Giuseppe Sinopoli (주세페 시노폴리)

 이탈리아의 지휘자.

1980년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면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런던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지휘자를 역임했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음악감독이자 수석지휘자를 지냈다.

 1946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고향인 시칠리아섬의 메시나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5세 때 베네치아로 돌아온 후 1965년부터 베네치아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는 한편, 파도바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해 정신과 수련의 과정을 밟았다. 이후 베니스 음악원을 졸업하고, 1971년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옮겨 지휘공부를 시작했다.
1980년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면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0년 빈국립오페라, 1983년 런던 코번트가든, 1985년 바이로이트 음악제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 차례로 데뷔했고, 그 동안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1983∼1987)와 런던 필하모니 관현악단(1984∼1995)의 지휘자를 역임했다. 이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향악단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음악감독이자 수석지휘자를 지냈고, 1995년과 2000년에 내한공연을 했다.

2001년 4월 20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독일국립오페라극장(도이체오퍼)에서 베르디의 전4막 오페라 《아이다》를 지휘하다 3막 연주 때 심장마비로 쓰러져 55세로 사망했다.

 

지휘 : Hartmut Haenchen (하르트무트 헨헨)

 1943년, 드레스덴(독일)출생

드레스덴 십자가 합창단의 단원을 지낸 후 성악과 지휘를 배워 1966년 로베르트프란츠 성악 아카데미의 지휘자로 취임했다. 할레 국립 관현악단의 제2지휘자를 맡아 베버콩쿠르 지휘 부문에서 우승했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아 관현악단과 보조지휘자를 거쳐 드레스덴 필하모니아 관현악단의 지휘자로 취임했다. 독일 고전파 작품의 지휘에서 맑고 차가운 인상을 남긴다

 

지휘 : Gottfried von der Goltz (고트프리트 본 데 골츠)

지휘 : Semyon Bychkov (시미욘 비쉬노프)

1975년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서 뉴욕의 매네스 음악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동 대학 관현악단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78년에 데뷔한 후, 같은 해에 버펄로 필하모니아 관현악단을 지휘하다가 80년에는 부지휘자가 되었고, 이듬해부터 수석 객연지휘자가 되었다. 그 후 워싱턴 내셔널 교향악단 · 디트로이트 교향악단 · 미네소타 관현악단 등 미국 유수의 오케스트라에 객연했고,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