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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처럼 / 다니엘 페나크 著

 

 

 

 

 

 

소설처럼 / 다니엘 페나크 著

 

책소개--


“소설은 그냥 소설로, ‘소설처럼’ 읽자!”
교사 출신 프랑스 국민 작가 다니엘 페나크의
애정과 위트로 가득 찬 독서 교육론

정말 골 때리는 책이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영겁의 돌덩이, 지겨움 그 자체다. 그게 책이다. 그냥 ‘책’ 말이다. 아이는 논술 과제를 쓸 때 책을 ‘책’이라고밖에 달리 뭐라 이름붙일 수가 없다. 이 책이든 저 책이든 아이에게는 그저 그렇고 그런 책일 뿐이다. (24쪽)

영화, 드라마뿐 아니라 유튜브, 웹툰, SNS 등 눈과 귀를 자극하는 콘텐츠가 쏟아지고, 아이들은 이미 그것에 마음을 빼앗긴 지 오래다. 그럴수록 더욱더 독서의 필요성과 당위성이 강조되지만, 시대와 국적을 막론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야 한다”는 구호가 공허한 외침으로 철저히 외면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로센 시리즈’ ‘까모 시리즈’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의 독서 에세이 『소설처럼』이 새롭게 리뉴얼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저자는 30여 년간의 교사 생활을 통해 아이들에게 실제 독서 지도를 해온 경험을 토대로, 가정과 학교에서 어른들에 의해 엄숙하고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어 온 독서 교육의 문제점을 유머러스하게 꼬집으며, 아이들이 책 읽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도록 깨우쳐주는 방법을 일러준다. 이로써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책 읽기 교육의 획기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학부모와 교사를 비롯해 그간 독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모든 이들에게 독자로서 즐거움을 찾아나서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목차--

 

연금술사의 탄생
책을 읽어야 한다―신성불가침의 원칙
읽을거리를 주어라
무엇을 어떻게 읽든―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책을 통해서 전염되는 병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서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著 : 다니엘 페나크 (Daniel Pennac)


1944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나,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아시아·유럽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에는 열등생이었으나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는 동안 독서에 남다른 흥미를 갖게 되었다. 프랑스 니스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1996년부터 파리와 근교의 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973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말로센 시리즈’와 어린이 책 ‘까모 시리즈’를 통해 대중성과 문학성을 두루 인정받으며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밖에 강압적인 독서 교육을 비판하고 책 읽기의 즐거움을 깨우치는 『소설처럼』을 비롯한 에세이와 다수의 소설, 시나리오를 발표했고, 2012년 출간된 일기 형식의 소설 『몸의 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1995년 교직에서 물러나 집필 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정기적으로 교실을 찾아다니며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미스터리 비평상(1988), 리브르앵테르 상(1990), 르노도 상(2007)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독서의 즐거움이 사라져간다고 해서(다들 우리의 아들딸이, 요즘 젊은 아이들이 책읽기를 싫어한다고들 하니까), 아주 까마득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다. / 그 즐거움은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다. / 다만 어떠한 길을 통해서 그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p.50

우린 정말로 아이가 걱정스러웠다. 어찌나 걱정스러운지 시도 때도 없이 내 아이를 또래의 다른 아이와 시시콜콜 비교하곤 했다. / 뿐만 아니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친구 아무에게 나……가 아닌, 학교 성적이 뛰어나며 죽어라 책만 읽는다는 아이를 둔 친구에게 자문을 구해보기도 했다. / 귀가 잘 안 들리나? 난독증이 아닐까? 아예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학습 장애가 있는 건 아닐까? / 별의별 검사를 다 해보았다. 청력 검사에서도 모든 게 정상이었다. 언어 치료사도 안심해도 좋단다. 심리 검사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 그런데 왜? / 둔해서일까? / 단지 둔해서일 뿐이라고? [……] 우리는 ‘교육자’를 자처하지만, 실은 아이에게 성마르게 빚 독촉을 해대는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가 없다. 말하자면 얄팍한 ‘지식’을 밑천 삼아, 서푼어치의 ‘지식’을 꿔주고 이자를 요구하는 격이다. --- p.58~59

그 많던 마법의 인물들, 형제며 자매, 왕이며 왕비, 영웅들은 다들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무수한 악의 무리에 쫓기면서 아이의 마음을 졸이게 하고, 아이로 하여금 존재의 고민을 잊게 만들었던 그 인물들이, 졸지에 깨알같이 납작해진 문자라고 불리는 이 잉크 자국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신에 가깝던 그 무소불위의 인물들이 창졸간에 점점이 바스러져 한낱 인쇄 기호로 짜부라지고 말았다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 책이라는 물건이 된 거라면, 이 얼마나 황당한 변신인가! 마법이 반대로 걸린 것이다. 아이도 아이의 영웅들도 다 함께 말 없는 책의 어마어마한 두께 속에 갇혀버린 셈이니 말이다! --- p.61

“천만에…… 당신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닐걸. 당신이 아이들에게 기대한 건, 당신이 정해준 소설을 읽고 그럴듯한 독후감을 쓰는 것, 당신이 골라준 시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학생들이 당신이 뽑아준 예상 문제 중에서 나온 텍스트를 능숙하게 분석해서 적절히 ‘설명’하거나, 당일 아침 시험관이 학생들의 코앞에 들이미는 문안을 칼같이 ‘요약’하기를 바라는 거잖아. 시험관도, 당신도, 부모도, 특별히 아이들이 책을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건 아니잖아? 뭐 그렇다고 딱히 책을 읽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야. 바라는 것이라곤 어떻게든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점수를 받는 일이지! 어른들은 성적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 p.95~96

그런데 독서의 즐거움, 행복한 책읽기란 과연 무엇일까? 새삼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이제까지의 정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제까지 우리 인격을 형성해온 책읽기란 대개는 순응하고 따르는 책읽기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반하고 맞서는 책읽기였다. 즉 이제껏 우리는 마치 세상과 등지듯 현실을 거부하고 현실과 대립하기 위해 책을 읽어왔다. 그래서 때론 우리가 현실 도피자처럼 여겨지고 현실마저 우리가 탐닉하는 독서의 ‘매력’에 가려져 아득해지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도망자,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탈주자인 것이다. / 모든 독서는 저마다 무언가에 대한 저항 행위다. 그리고 그 무언가란, 다름 아닌 우리가 처한 온갖 우연한 상황이다. [……] 제대로 된 독서는 우리 자신까지도 포함하여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한다. --- p.103~104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글을 쓰는 시간이나 사랑하는 시간처럼 말이다.) / 대체 어디에서 훔쳐낸단 말인가? 굳이 말하자면,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의무의 시간에서다. / 그 ‘삶의 의무’의 닳고 닳은 상징물인 지하철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관이 된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 책을 읽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 그렇듯, 삶의 시간을 확장한다. / 만약 사랑도 하루 계획표대로 해야 하는 것이라면, 사랑에 빠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들 사랑할 시간이 나겠는가? 그런데도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할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나도 책 읽을 시간을 내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일 때문에 좋아하는 소설을 끝까지 읽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독서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효율적인 시간 운용과는 거리가 멀다. 독서도 사랑이 그렇듯 그저 존재하는 방식인 것이다.

--- p.161~162

 


출판사 리뷰--


아이들은 왜 책 읽기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아이들은 단지 잊고 있었을 뿐이다, 책 읽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단지 아이들은 책이 무엇이며,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잊고 있었을 뿐이다. 이를테면 소설이란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설은 ‘소설처럼’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소설 읽기란 무엇보다 이야기를 원하는 우리의 갈구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_151쪽

책 읽기는 아이들에게 기피하고픈 대상이다. 저자는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게 된 것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분명 어렸을 때는 잠들기 전 아이가 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고 귀찮을 만큼 졸라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아이들을 책과 멀어지게 했을까? 문자를 깨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깨알 같은 글자가 빼곡히 들어찬” 책과 홀로 씨름하게 된다. 잠이 들 때까지 다정하게 책을 읽어주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읽어야 하는 도서 목록에 둘러싸인 채 이 “엄청난 노역에 지레 압도당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들이 책이 주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미처 느끼기도 전에, 부모와 교사의 다그침에 좌절하며 더 멀어지게 만든다고 진단한다. 즉 우리가 ‘독서 교육’이라 부르는 것이 외려 역효과와 부작용을 불러오는 셈이다. 사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무런 목적도 대가도 없는 “무상성을 전제로 한다.” 저자는 책은 ‘즐겁기 위해 읽는 것’이라는 단순하고도 자명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은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조금도 지장을 주지 않을 책일지라도?
그보다 더한 고독은 없을 만큼 절대적인 고독이자 크나큰 슬픔이다”

독서는 인간에게 동반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자리는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자리도,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어떠한 명쾌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삶과 인간 사이에 촘촘한 그물망 하나를 은밀히 공모하여 얽어놓을 뿐이다. 그 작고 은밀한 얼개는 삶의 비극적인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살아간다는 것의 역설적인 행복을 말해준다._225쪽

저자는 말한다. 아이들에게 그저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분량은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기간은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으려 할 때까지. 저자는 “모든 독서에는 읽기의 즐거움이 자리하기 마련”이라며, 끝없는 인내와 사랑으로 아이들이 책 읽기를 즐거운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기다릴 것을 당부한다. 또한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교육 현장에서 책 읽기에 전혀 관심이 없던 아이들에게 시도한 실제 지도 사례가 생생하게 제시되어 있다. 교사가 책을 읽어주는 동안 학생들이 하나둘 책 읽기에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책과 어울리게 되는 학생들의 변화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특히 책의 말미에 제시된 ‘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열 가지 권리’(독서 권리 장전)는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학교에서 읽기를 배우지만, 책읽기를 좋아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 더 이상 ‘의무’가 아닌 ‘권리’로, 어른들이 앗아간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독서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서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저자는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독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먼저 제공함으로써 책 읽기에 자발적으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이야말로 출간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이 책이 여전히 유의미한 독서 교육 지침서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