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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문화사 / 앤서니 애브니

 

 

 

 

시간의 문화사 .. 달력,시계 그리고 문명이야기

앤서니 애브니저/최광열역  원제/EMPIRES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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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애브니​--

​콜게이트대학의 천문학 교수이자 인류학 교수.

1982년 에 의해 ‘올해의 교수’로 뽑혔으며, 1991년에는 지에 의해

‘천문고고학 분야 미국 10대 교수’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고대천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오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씌어진

그의 책들은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호평받고 있다.

지은 책으로 《행성과의 대화Conversing With the Planets》

《유리구슬 뒤에서Behind the Crystal Ball》《별을 향한 길Stairways to the Stars》

《최초의 미국인The First American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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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상의 날짜라는 것은 기준을 달리 하면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우리는 마치 공기나 물에 대해 그러하듯 달력을 너무도 당연시하고 절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열두 장으로 구성된 달력 속엔 인간이 ‘시간’이라는 거대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온

오랜 시행착오의 역사 그리고 땀과 피가 숨어 있다.

이 책 『시간의 문화사 : 달력, 시계 그리고 문명 이야기』는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이해해왔는가’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로서,

고대 문명과 천문학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돋보이는 책이다.

미국 콜게이트대학의 교수인 저자는 이 책의 서장에서 대표적 영어사전인 《웹스터 사전》을 펼쳐

‘시간’ 항목을 찾아보고는 새삼 놀랐음을 고백한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2006쪽짜리 대사전을 넘겨보면서 “이 단어보다 더 많은 설명이 있고,

또 그 설명이 서로 엇갈리며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 낱말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어안이벙벙해 한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시간을 어느 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끈이나 화살로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과거와 미래를 묶어주는 끈이나 화살, 현재의 순간순간을 나타내는 무한히 좁은 면面을 지닌 끈이나 화살로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오가는 길이나 강처럼 우리의 삶도 선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의 선조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이 은유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생을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떤 틀이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거기에 꿰맞추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서양과 비서양의 ‘시간’에 대한 생각과

그 측정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면밀히 추적해나간다.

저자는 “타 문화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욱 분명하게 들여다보기 위함”이라는

20세기 초의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의 말을 인용하며,

시간을 비교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이 책의 목표임을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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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시계 : 미시사적 주제에서 거시사적 지평으로

저자는 1장 <시간의 기본 리듬>에서 감자, 굴, 벌, 초파리 등과 관련한 실험들을 예로 들며 생명주기와 천체 리듬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두 가지 주장, 즉 ‘생래가설’과 ‘외인가설’을 설명한다. 그리고 2장 <초기의 시간 측정>부터는 로마 제국의 산물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에게서 그 목가적 뿌리를 찾을 수 있는 현대의 서양 달력을 해부한다. 저자는 이처럼 이 책의 전반부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의 복잡다기한 속성들, 달력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요소와 유래를 밝히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서양의 사회사, 경제사, 정치사 속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시간을 기록하고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은 셀 수 없이 많은 우연한 사건들과 우리가 과거에 했던 올바르거나 그릇된 선택들의 결과이다. 이를테면 예수는 아인슈타인 못지않게 달력과 관련이 깊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뤼시앵 페브르의 말처럼 “달력은 그리스도교를 말한다”. 카이사르, 다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 아리스토텔레스 등도 달력의 구성에 일조했다.

개인뿐 아니라 대규모의 사회운동도 달력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시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르네상스 시대에 널리 퍼졌던 자유주의 정신, 중세 상인계층의 성장, 마르크스주의 이론, 진화론, 실존주의, 실험적 학문의 발달 등을 통해서 주조돼왔다. 우리는 《성경》의 〈창세기〉, 그리스의 《신통기》,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 같은 저 위대한 창조설화들로 거슬러 올라가 시간의 궤적을 추적할 수 있다. 학문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는 오늘날의 달력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우리의 시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서양의 유대교-기독교 계통의 사회를 살펴보는 것이며, 과거의 여러 요인이 전혀 다르게 조합되었더라면 미래가 어떻게 달라졌을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아프리카의 누에르족이나 태평양의 트로브리안드족 같은 부족사회나, 고대 잉카문명과 아스텍문명, 마야문명의 ‘시간’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인다. 마야인, 아스텍인, 갈리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중국인, 히브리인, 콥트인, 무슬림은 모두 달력을 만들었다. 달력은 콜럼버스가 발견하기 전 중앙아메리카에서 신들이 지녔던 권력을 보여주는 주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또한 저자는 공동체 생활의 리듬을 나타내는 동시에 이 리듬의 규칙성을 유지시켰던 달력의 기능을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 《신통기》 그리고 성서의 <창세기>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아울러 빙하시대의 뼛조각들과 스톤헨지, 수메르의 진흙 서판 등을 언급하며 구전방식과 문자방식의 차이를 설명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문자와 셈법을 발명하고 발전시켜온 옛 문명의 지혜와 노력, 달력 개혁의 지난한 역사, 개별 달력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양과 서양의 역법은 어떻게 다른가

고대 중국에서는 시간을 측정하는 서양의 과학적 방법을 낳은 모든 요소들이 벌써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국의 천문학자들은 정밀하고 꼼꼼한 관측자로서 복잡한 수학을 사용했으며

그들 역사의 초창기에 이미 꽤 진보된 기술을 발전시키기까지 했다.

화약과 나침반과 인쇄술은 서양인들의 역사를 바꾸어놓은 가장 중요한 3가지 발명품인데,

그것은 사실 중국의 선물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고등수학과 자연 관측을 독특하게 종합하는 데에 실패했을까?

왜 중국의 케플러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나오지 않았을까?

저자는 이것이 신중하게 심사숙고한 일련의 취사선택이라기보다는

역사의 극적인 사건이 세계를 이해하는 현대 서양의 과학적 방식으로

우리를 이끌었다는 것이 하나의 대답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놀라운 것은 이러한 발견들이 예전에 이미 이룩되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중국 철학자들의 시야와 그리스 철학자들의 시야는 전혀 다른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에 기초한 도시국가에서 살고 생각하며 가르쳤다.

한편 중국의 철학자들은 단단히 조직화되고 엄격하게 통제되는 봉건 관료주의의 일원이었다.

봉건 관료주의는 역사를 경외하고 그로부터 깊은 도덕적 의미를 찾아내는 조직이었다.

이에 비해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존경심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들의 관심은 오늘날의 우리와 아주 흡사하게 현재에 모아져 있었다.

게다가 그리스의 대화 방식은 공개적인 논쟁, 가장 엄밀한 형태의 논리로 논점을 증명하는 방식에 집중되어 있었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논리가 아니라 역사로 논점을 증명했다.

학자이자 철학자인 사람이 그 지배자에게 역사적 사례를 인용하면 그것은 의미심장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아카데메이아에서 가르치고 난 다음 광장의 시장에서 휴식을 취했던 플라톤과 달리,

중국의 철학자들이 접근했던 유일한 귀는 지배자였다.

그러니 중국인들이 서양인들과는 상당히 다른 자연관과 세계관을 발전시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면에서 발견되는 서양과 동양의 시간 인식에 관한 유사성은 저자뿐 아니라

독자인 우리 모두에게 ‘인간은 결국 하나’라는 가슴 뭉클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시간의 문화사》는 저자 앤서니 애브니의 방대한 지식과 필력 못지않게 230여 개에 달하는

꼼꼼한 역주와 수십 장의 관련 자료 사진이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의 목표는 세계의 달력과 시계들이 갖는 문화적 의미와 신과의 관계, 자연의 리듬,

그리고 종교적-정치적 음모 등에 관한 ‘전체적 조망’,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조망’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이 방대한 인문서는 구성이 꽉 짜여진 소설이 아니기에 관심이 가는 주제라면

어느 장부터 시작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시간을 지배함으로써 오히려 시간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 과정을 ‘

과학사+문화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흘려 보내는 시간에 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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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우리는 늘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 속에 이어진 시간들이 늘 어디서 부터 시작해서 어디로 이어갈지,

언제나 살면서 의문 투성이 인채로 아마도 세상을 마감하지 않을까 추축해보기도 한다

결국 떠나가는 시점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미래에대한 불확실성의 존재 가치를 생각해 본다

..

이 책으로....​

포괄적인 범위로 세상을 보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 즉 이전의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올 이후의 사람들에 대한 문제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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