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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冊's. 心理

- 철학자의 여행법 / 미셸 옹프레

 

 

 

 

 

 

 

 

 

 

 

어디로 여행가느냐가 아니라
왜 가는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방법

철학자의 여행법 미셸 옹프레 지음 | 강현주 옮김 | 세상의모든길들

수많은 사람이 오늘도 여행길에 오른다. 팍팍한 삶에 지쳐 달콤한 휴식을 갖기 위해,

혹은 의미를 찾지 못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에서, 아니면 내가 누구인지 답을 찾기 위해서….

여행에 대한 책도 그만큼 쏟아지고 있다. 특정 지역 여행에 대한 실용정보부터 주제별 여행서,

그 옛날 순례부터 현대까지 여행 역사서, 공정여행 등 다양한 여행 방법, 개인의 여행기까지 여행 서적들도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행의 기술>로 유명한 알랭 드 보통은 여행 지역에 대한 조언은 많지만,

우리가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나 그 방법에 대한 조언은 적다고 지적했다.

<철학자의 여행법>은 여행의 시작부터 그 과정과 끝,

그리고 여행하는 행위가 갖는 의미 등에 대한 한 철학자의 사유를 응축시킨 책이다.

달리 말하면,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여행에 대한 갖가지 조언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저자인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는 주류 철학사상들에서 소외돼온 쾌락주의를 조명한 대작 <반철학사>로 잘 알려져 있다.

<철학자의 여행법>에서 우선 흥미로운 것은 여행 행위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다.

여행은 저항이라는 것이다. 권력이나 사회규범 등 개인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반항이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여가시간을 미끼로 문명이 요구하는 노동에 시간을 사용하길 거부하는 것”이자

“현대 사회의 족쇄나 구속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개인을 스스로 통제하게 하고, 쉽게 감시할 수 있게 만든 권력에 대한 거부”다.

 나아가 “가족·고향 같은 스스로를 가두고 통제하는 것들에게 형을 선고하는 것”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유목민 기질을 가졌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지구처럼 둥근 엄마의 뱃속에서 미지근한 양수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뼛속 깊이 어쩔 수 없는 유목민의 기질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정착했고, 도시를 세웠으며, 곧 권력자에게 유용한 규범과 규칙이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이동에 대한 열망, 변화에 대한 열정, 움직임에 대한 욕구, 공동체에 대한 고질적 부적응력,

독립에 대한 집착, 자유에 대한 숭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니 결국 유목민과 정착민의 대립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인류 역사가 유목민과 정착민의 대립으로 움직여졌다고까지 분석한다.

정착한 아리아족 나치의 유목민 및 유대인 박해, 스탈린주의자들의 남시베리아·

코카서스 유목민 학살 등을 들며 권력자, 통치 이데올로기는 유목민들을 지배·통제하려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역시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모든 것들을 사회의 악으로 간주함으로써 여전히 대립은 남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도 수천년전 부터 이어져온 “유목민의 발자국을 따라” 여전히 여행길에 오르고 또 오른다.

저자는 여행 목적지의 선정은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아가 이끄는 대로”

가라며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따르라고 말한다.

다이모니아는 판단이 어려운 순간에 인간의 내면에서 해답을 속삭여주는 존재를 의미한다.

풍요로운 여행을 위해선 동경하고, 한껏 욕망을 부풀리고, 무엇보다 시나 산문 읽기를 권한다.

여행 중에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여행의 정수를 뽑아내 기록하라고 말한다.

기록 수단은 그림이든 사진이든 메모든 중요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억을 오히려 혼란스럽게 뒤섞어버리는 많은 양이어서는 안된다.

“한 여행에서 3~4가지, 많아야 5~6가지면 충분하다. 방향을 정하는 데 4가지 방위 기점이면 충분한 것처럼.”

여행 중 세상, 문화를 보는 관점도 중요하다. 자기중심적이자 편협된 시각이 아니라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것.

“성경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본” 윅 신부보다는 “문화 사이에 우열은 없다”며 열린 눈을 강조한 레비스트로스의 관점이 낫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여행론도 꼬집는다.

그는 장기간에 걸쳐 한 지역의 언어를 배우고 원주민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 참다운 여행이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롤랑 바르트는 일본에 겨우 85일간 머물렀지만 민감한 감수성, 지진계와 같은 기질,

생기 넘치는 영혼, 지성으로 일본에 오래 살며 정식 학위를 받은 서양인보다 더 많이 받아들이고 더 깊이 있게 파악했다.”

 거주 기간보다는 시인 혹은 예술가의 직관과 통찰이 필요하고, 이론적 능력보다는 시각적 능력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굳어진 몸과 마음의 정착민보다는 열리고 개방적인 유목민 특성이 보다 순수한 여행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상당수 여행객들의 여행 목적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자아를 찾기 위한 것이다.

저자도 “자아에 더 익숙해지고, 더 강해지고, 더 잘 느끼고,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답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인간의 “자아에 대한 탐험은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까지 계속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