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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속에서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삶

 

 

 

낮추고 사는 즐거움/조화순 지음/도솔출판사



조화순 목사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인천산업선교회, 그리고 동일방직사건이다. 내가 조화순 목사님을 1970년대 중엽 만나 뵌 곳은 인천산업선교회 사무실에서였다. 그때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정작 목사님보다도 인천산업선교회 건물이었다. 그 건물은 양옥이거나 한옥기와집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초가지붕으로 된 허름한 한옥이었다. 그때의 인상은 지금도 선명하다.

조화순 목사님은 감리교 여자 목사로, 엄혹한 시절에 오래 인천산업선교회에서 일을 했고, 그 후 달월교회 담임목사로 봉직하다가 은퇴하였고, 지금은 봉평의 태기산 자락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조화순 목사님이 최근에 펴낸 이 책은 평을 해야 할 책이 아니다.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자연 속에서 살면서 자연으로부터 배운 삶의 지혜와 감동 그리고 자신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2장에서는 살아왔던 지난날들의 기억을, 3장에서는 잊지 못할 사건과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교훈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는데, 그 감동이 적지 않다. 조화순 목사님의 살아온 삶을 통해서 어떤 눈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자연을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새삼 느끼고 깨닫게 하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비교적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종교적인 영향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희생과 봉사의 삶을 꿈꾸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역사의 격변기를 살아오며 가난한 농촌을 위해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 같은 사람이 되어 가난한 농촌의 등불이 되고 싶어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그는 부산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때가 겨울인데다 학교건물을 임시로 개조한 병원이라 난방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부상병들은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는 생각다 못해 창고에 있는 피범벅이 된 담요들을 꺼내서, 학교 연못의 얼음을 깨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빨래를 했다. 그 담요를 햇볕에 잘 말린 다음 잘라서 저녁마다 덧버선을 만들었다.

당시에 중환자실 환자가 오륙십 명 정도 되었는데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유심히 봐둔 뒤 하루에 대여섯 켤레씩을 만들어서 나누어 주었다. 그때 환자들의 고마워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후에 그는 목사가 되어 덕적도, 섬의 작은 교회에서, 시흥의 달월교회에서 열악한 조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목회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그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계기를 만나게 되었다. 인천 지역은 여자 노동자의 비중이 큰데, 여자 목회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곳이 구체적으로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산업선교회로 가게 된 것이다. 그는 이른바 위장취업을 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그는 진정으로 낮은 곳에 임하시는 예수를 만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예수를 닮은 삶을 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면 그것은 물론 노동자들과의 만남이었다. 동일방직에 직공으로 들어가 노동을 체험하고 어린 여성노동자들의 아픔을 몸소 알게 되면서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80년대는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가혹해지면서 운동의 이론과 방향이 근본적으로 재검토되고 새로운 운동방식이 정립되는 시기였다. 그는 새로운 운동 이론을 공부한 젊은 활동가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18년간 청춘을 바쳐 활동했던 노동현장을 떠나 다시 목회 현장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놀랍게 생각한 것은, 끈임 없이 주변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반성하며, 서 있던 자리보다 더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향할 줄 안다는 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주변의 노동자들이 좋다고 하면 좋고, 나쁘다고 하면 나쁘다고 믿는다. 한번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목사님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우리를 무시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 나는 그 노동자의 이야기를 되씹고 되씹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어두운 내 마음의 하늘을 가르고 지나가며 환히 밝힌 천둥번개였다. 일순간의 일이었지만 내 마음속 가장 밑바닥에 흐르고 있던 검은 바닥을 밝힌 것이었다 … 권위적인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 나를 반성했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노동현장을 떠난 후 그는 예순 여섯 나이에 13년 간의 달월교회 목회활동을 조기 은퇴하고서 자연의 품으로 돌아왔다. 농촌생활은 그의 어렸을 때의 꿈이기도 했다. 봉평의 태기산 자락 아래로 들어온 이후, 그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산다고 말한다. 인생을 두 번 사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을 성찰하고 어떻게 변해야 할지를 결심하기도 전에, 자연이 그를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산책길에 만나게 되는 꽃과 나무에 감동을 받으면서, 텃밭을 가구고 손수 살림을 하면서 그는 서서히 자연에 동화되어 간다고 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인간과 똑같은 소중하고 귀한 생명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경험하면서 그는 의식과 삶이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바뀌는 것을 느낀다.

"하루는 산책을 하는데 산비탈에 피어 있는 작은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 작기는 하지만 노랗게 핀 꽃이 너무 예뻤다 … 그날 나는 한 송이 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산책길에서 만난 작은 꽃 한 송이가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무도 오지 않더라도 아무도 봐주지 않더라도 우선 자신에게 먼저 최선을 다해서 꽃 피우는 것이 나의 할 일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것이 진정한 나를 만나는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 나도 나만의 향기를 뿜는 노란 꽃을 피워내자 …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매일같이 기도하고 산책하고 명상하면서 나를 나답게 하고 나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답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꽃은 스스로 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피는 것이 아니고, 또한 자리를 선택해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연이 닿은 곳에 떨어진 씨가 때가 되면 싹이 트고, 줄기를 내고 꽃을 피워내듯이 내가 원한다고 해서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바라는 것, 그 마음 자체를 놓아 버리는 것이, 진정한 나를 만나는 길이 아닐까. 어떤 결과를 상정하고 그것에 연연하기보다는 하루 하루의 삶에 충실한 것이 진정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나를 나답게 하기 위해, 놓아버리는 연습을 하려고 산책길에 오른다.

" 흙을 만지다 보면 그는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고 한다.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는 것 같은 편안한 마음이 든단다. 농사를 지으면서 그는 사람들이 두더지, 지렁이가 포크레인이라고 말한 것을 실감한다. 그냥 놔두면 그것들이 알아서 다 땅을 갈아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더지가 한번 지나가면 땅이 파이고, 지렁이가 지나가면 땅이 푸석푸석해졌다. 유기농을 하면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벌레들과의 만남이다. 텃밭에 갈 때마다 정말 우주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렁이, 땅강아지, 배추벌레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벌레들이 밭에서 함께 살고 있다.

그 중에는 해충도 있고 지렁이처럼 농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들이 다 그의 작은 텃밭을 중심으로 그와 함께 공생(共生)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단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의지하고, 돕고, 환원하고, 돌고 도는 것이 생명의 이치가 아닐까 하고. 그리고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면, 어느새 나무들의 이야기들도, 저 팔만대장경 같은 자연의 말씀도 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여태껏 가슴이 시키는대로 살았다. 그는 가슴으로 사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 세상이 훨씬 진실한 세상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지금보다 더 인간적인 세상, 더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세상 말이다.

그의 마음은 늘 넉넉하다. 그것은 그의 마음에 사랑이 넘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하루 종일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집 뒤 오솔길을 산책하면서 나무, 바람, 빗방울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 가운데에서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한결같이 들려오는 소리는 ‘언제나 사랑을 잊지 말아라’라는 것이다. 사랑을 잊지 않았기에 그들은 봄이면 다시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수많은 초록이파리로 우리를 만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그는 자연의 고통을 들을 줄 알고 느낄 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미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한번은 나무를 심다가 잘못해서 가지 하나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무의식중에 팔을 잘못 움직여 가지 하나가 꺾였는데 그 순간 갑자기 내 팔이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픈 것이었다. 얼마나 아프던지 ‘아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팔을 꼭 붙들었다. 통증이 가시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가지가 꺾인 나무의 아픔이 내 팔을 통해 전해진 것 같았다. 놀라웠다. 나무와 내가 하나가 되는 동질의 감정을 느끼면서 나는 나무도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나무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무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생명이 그렇게 귀한 줄을 전에는 몰랐었다."

이렇게 모든 만물이 유기체적인 생명공동체임을 가슴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그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죽음 또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낙엽이 썩어 거름이 되고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듯이 자연 속에서 그런 순환을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나는 점점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일관되게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의 편에서 살아왔고, 이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인으로 살고 있는 조화순 목사의 삶을 거울처럼 보여준다. 그의 삶은 아래로 아래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가장 비천한 곳으로 내려와 조건 없이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고 뽐내지도 않는 물과 같다. 그의 삶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려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어 죽음으로써 미움과 파괴와 죽임을 사랑과 희망과 생명으로 뒤바꾸어 놓았듯이, 사랑을 잃지 않고 마음이 시키는대로 생명의 춤을 추며 살아온 삶이다. 그의 이야기 앞에 가슴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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