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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ic. /classic.III

- 역사를 만든 음악가들/로르 도트리슈 著

역사를 만든 음악가들/로르 도트리슈 著

 

 

 

 

책소개------

 

태양왕 루이 14세부터 9·11 테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에 그들이 있었다

프랑스의 유력 방송사 ‘유럽1’의 문학·과학 담당 기자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했던 로르 도트리슈가 역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겪었던 작곡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다. 음악에 대한 애정과 기자로서의 취재력을 바탕으로, 태양왕 루이 14세부터 9·11 테러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한가운데에서 스스로 역사가 되어야 했던 작곡가들의 삶을 대담하고도 생생히 구현해낸다.

“모차르트가 말년에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베토벤이 혁명 사상에 경도되지 않았다면 그의 교향곡들은 어떻게 됐을까?”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서만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일까? 혹은 한 시대의 사회를 반영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로르 도트리슈는 아도르노의 말을 빌려 “모든 음악은, 가장 개인적인 음악조차도, 침해할 수 없는 고유한 집단적 내용을 지닌다”고 말한다. 음악은 사회와 역사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개인으로부터 태동하여 창작이라는 신비로운 과정을 거쳐 우리의 귀에 도달한다.

로르 도트리슈는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해,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작곡가를 둘러싼 세계와 음악사적 전통, 그리고 작곡가 내면의 욕망과 불가사의한 재능을 한꺼번에 마주하는 총체적인 경험임을 드러낸다.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되살려낸 열세 명의 작곡가와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만든 작품이 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비로운 현상을, 더불어 예술의 당위성에 대한 깊은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목차----



들어가며
장바티스트 륄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프랑수아조제프 고세크
루트비히 판 베토벤
엑토르 베를리오즈
주세페 베르디
클로드 드뷔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기데온 클레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존 애덤스
참고 문헌
감사의 글
옮긴이의 말


저 : 로르 도트리슈 (Laure Dautriche)

 

프랑스 서부 포르니셰에서 성장했고 생나제르 음악학교를 다녔다. 2009년부터 유럽1 방송사의 문화유산과 역사 및 과학 분야 기자로 일하는 동시에 바이올린 연주자로도 활동했다. 음악학과 문학으로 학위를 받았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활동한 천재 음악가 13인의 예술 여정을 추적한 『역사를 만든 음악가들』을 썼다. 팟캐스트 작가로서 〈권력 앞의 음악가들〉(2020년 7월), 〈코로나바이러스, 급변한 세상 이야기〉(2020년 5월), 〈여성 인권 60년사〉(2020년 3월) 등에 참여했으며, 저널리즘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2009년 로가델마스 저널리즘 장학금을 받았다.

 

 

 

 

 

책 속으로-----

 

첫 문장
그들은 격동하는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들의 음악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지 못했지만 주목받지 못한 채 사라지지도 않았다. --- p.13

-베르사유궁의 륄리에서부터 생애 마지막 7년을 프리메이슨 사상에 푹 빠져 보냈던 모차르트와 나치즘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스탈린에게 박해받았던 쇼스타코비치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때로는 눈부시고 때로는 신비로운 음악을 통하여 자신들이 목격한 역사의 독특한 증언을 남겼다. --- p.15

-젊은 군주는 춤을 무척 좋아하여 매일 몇 시간이나 춤에 몰두했다. 륄리는 여기에 전부를 걸었다. 그는 왕에게 금빛 햇살로 짠 듯 화려한 의상을 입은 아폴론의 모습으로 무대에 서라고 권했다. --- p.21

-700개의 북이 해자의 바깥 제방에 설치되었으며 피리, 오보에, 트럼펫은 해자 안으로 들어갔다.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륄리는 마지막 화음이 울리는 순간 축포 여든 방을 터뜨려 군신 마르스의 호전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왕은 다시 한 번 정복당했다. --- p.29

-열의 넘치는 음악가는 기묘한 변주와 예기치 않은 화음을 도입하곤 했다. 그는 뿌리 깊은 관습을 흔들러 온 자였다. 바흐는 늘 하던 대로나 하라는 말을 들었다. 조바꿈을 연달아 사용할 땐 충분히 시간을 두라든가, 음악적 해석에 있어 지나친 표현을 자제하라든가 하는 지시가 있었다. --- p.45

-프리메이슨의 관행이 자기 같은 작곡가에게 틀림없이 유익하리라는 것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곧장 프리메이슨의 상징과 의례를 엮어 넣어 지회를 위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형제회에 속해 공동의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곧 인류의 진보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 p.60

-작품 속에서 오가는 다양한 수준의 대사는 프리메이슨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모차르트의 도전 과제였다. 이탈리아어가 아닌 독일어로 오페라를 쓴 것은 모두에게 이해받고 싶어서였다. 형식을 다양화한 것도 모든 사회 계급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 p.74

-합창단원이 1000여 명, 연주자가 300명, 북잡이도 300명이 동원되었다. 고세크는 군중을 단번에 사로잡기 위해 아이디어를 냈다. 그 많은 합창단원이 모두 한꺼번에 제창을 하게 한 것이다. 모두가 같은 선율을 불렀다. --- p.85

-베토벤이 타고난 운명을 뛰어넘은 보나파르트라는 프랑스 장군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이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가 보기에 보나파르트는 세습군주제를 완전히 물리칠 수 있는 위대한 정치인이었다. --- p.103

-1805년 5월, 파리에서 보나파르트가 머지않아 황제의 자리에 오를 뜻을 밝혔다. 베토벤은 머리에 구멍 난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 p.106

-그날 저녁 오페라극장의 열기에 취한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여섯 절로 이루어진 〈라 마르세예즈〉를 두 합창단과 오보에 없이 트럼펫만 여섯 개에 이르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버전으로 편곡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이 작품을 원곡자 루제 드 릴에게 헌정했다. --- p.129

-“내가 프랑스에 앙심을 품었다고들 합디다. 아니요, 내게 앙심이라고는 없습니다. 그건 지나치게 가벼운 말이지요. 난 그저 야만적인 나라에서 도망쳤을 뿐입니다.” --- p.139

-하루 사이에 베르디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살롱에서든, 여인숙에서든, 비밀 공모를 꾸미는 집회에서든, 사람들은 어디서나 〈날아가라, 상념이여〉를 불렀다. 그 후로부터 이탈리아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장장 20년 동안 이 노래는 민중 투쟁의 상징으로 울려 퍼질 것이었다. --- p.145

-그 악보의 여기저기서, 이제 막 시작된 전쟁에 타격을 입은 드뷔시의 차가운 분노가 드러났다. 한 음 한 음이 음향적 사건이었다. --- p.168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전쟁터의 허허벌판에서 철모를 쓴 병사들이 그의 「첼로 소나타」--- p.L. 135)를 연주했다. 드뷔시의 친구 모리스 마레샬과 앙드레 카플레였다. 그들에겐 쓸 만한 악기가 별로 없었다. 손수 만든 첼로 한 대, 피아노 한 대, 그리고 음표가 그려진 종이 한 장이 다였다. 첼로는 문짝에서 나온 토막들과 탄약 상자로 만든 것이었고, 피아노는 해체와 조립이 가능해서 병사들이 어딜 가든 가지고 다녔다. 전쟁터에서 숨 돌릴 틈이 생길 때마다 그들은 눈빛 교환과 고갯짓을 신호 삼아 연주에 들어갔다. --- p.173

-슈트라우스는 무엇보다 베를린 올림픽을 위해서 만든 〈올림픽 찬가Olympische Hymne〉를 직접 지휘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러다 1936년 3월, 마침내 히틀러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데 성공했다. --- p.190

-자신을 눈여겨보는 스탈린을 의식하면서도 쇼스타코비치는 음악에서만큼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자 몸부림쳤다. 그 무엇도 자기 예술을 포기하는 것보다 끔찍하지는 않았다. --- p.215

-앞서 테레진을 떠나기 직전, 클레인은 친하게 지내던 한 여성에게 자기가 그곳에서 만든 모든 작품의 악보를 맡겼다. 모든 것 위에 예술이 있다.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인간은 죽어도, 결코 죽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고. 언젠가는 역사가 작품을 통해 자신을 기억하리라는 것을 그는 아마 알았으리라. --- p.242

-장관은 집무실로 돌아와서 이렇게 외쳤다. “테오도라키스가 바다를 좋아한다고? 지도 좀 줘봐.” 그는 해안에서 가장 먼 곳을 골라 테오도라키스 가족을 그리로 보냈다. --- p.262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2002년 1월, 그는 미 동부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 감독이 그에게 세계무역센터 테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작품을 만들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애덤스가 생각하기에도 20세기 미국의 모든 관현악 레퍼토리 가운데 이 특별한 역사적 순간에 부응할 만한 작품은 없는 듯했다. 그럼에도 9.11 테러를 음악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두렵기 짝이 없었다. --- p.278

-어둠이 내리면 애덤스는 결코 침묵하지 않는 그 도시의 소리를 녹음했다. 새벽 3시에도 교통 소음이며,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이며, 발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벽에서 발견한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연을 읽으며 이 소리들의 콜라주를 만들어내고, 이를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덧입혔다.

--- p.281

 

리뷰-----


방앗간 집 아들에서 루이 14세의 어용 작곡가가 된 륄리, 루터의 신봉자 바흐, 보나파르트에게 매혹되었다가 후회로 악보를 찢어버리기까지 했던 베토벤, 평생 스탈린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던 동그랗고 근심 어린 얼굴의 쇼스타코비치…… 음악사에 길이 남을 열세 명의 천재 작곡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삶과 음악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음악은 인간의 삶으로부터 나온다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책에 담긴 기나긴 음악사의 여정은 야망으로 가득 찬 열네 살의 이탈리아 소년 장바티스트 륄리로부터 시작된다. 춤과 음악에 재능이 있었고,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었던 한 소년이 30여 년간 왕의 치세를 ‘볼거리’로 구현하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과정을 그려 보이던 작가는 독일로 그 무대를 옮겨 “신의 말씀은 글이 아닌 소리로 옮겨진다”라는 루터의 철학을 평생 따랐던 바흐에게로, 이어 종교적 관용과 사랑을 좇아 프리메이슨 입단식을 치르는 모차르트에게로 종행무진 이동한다. 그 여정에서는 왕권이나 신의 권능, 혹은 종교적 환희를 칭송하는 음악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함께 작곡가들의 사적인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곳에는 말년에 이르러 추문에 시달리다 권력에서 밀려난 궁정 악장이, 달빛 아래서 악보를 베껴 쓰는 고요한 뒷모습이, 비싼 마차를 샀다가 곧바로 후회하고 돈을 빌리러 다니는 병든 천재가 있다. 이들의 성공과 후퇴,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걸작들과 음악사적 쾌거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작곡가들의 바람은 단 하나, 계속 음악을 만드는 것

정치와 권력에 이용당하는 음악가에서부터 스스로 시대정신의 상징을 자처한 작곡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소개하는 한편, 작가의 시선은 사회사적 의미를 뛰어넘는 창조와 예술의 영역으로 향한다. 음악학을 전공한 로르 도트리슈는 자신의 음악적 지식을 십분 발휘해 작곡가들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들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음악사적 계보와 세계사가 나란히 놓이는 모습을 통해 독자는 폭넓은 독서를 경험하며, 전 시대를 아울러 모든 작곡가들의 열망이 하나의 방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은 계속 음악을 만들기를, 자신의 음악이 언제까지나 음악당에 울려 퍼지기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우리 자신을 위한 음악을 위하여

어떤 작곡가들에게 음악이란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 위한 수단이었다. 누군가에겐 권력에 저항하기 위한 방책이었고,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생존의 수단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음악이란 무엇일까? 책의 가장 마지막에 놓인 이름을 통해 어렴풋이 그 답을 유추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9·11 테러가 일어나고 4개월이 지났을 무렵,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곡가 존 애덤스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예술 감독으로부터 추모 작품을 의뢰받는다. 오랜 시간 시대의 장면을 음악으로 구현해온 이 작곡가는 고민에 빠진다. 그가 범접하기에 너무나 가깝고,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는 새삼스러운 질문으로 돌아간다. ‘추모를 위한 작품은 어떻게 쓰는 걸까?’ 그의 말대로 음악은 결코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다. 비극을 없던 일로 되돌릴 순 없다. 그러나 작가의 첨언처럼, 음악은 그 너머의 무언가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팬데믹과 전쟁으로 또다시 역사의 비극을 생생히 목도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방식으로 남아 있는 것인지 모른다.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교향곡 9번」을 작곡하며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처럼 말이다.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나 보라, 인류는 합심하고 연대할 수 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