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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인들이 보내온 봄편지





해운대, 지리산, 대관령, 대천항에 찾아든 봄

사람살이가 힘들다고 봄이 아니 오던가. 자연은 언제나 공평하게, 사방에 봄을 부려놓는다. 부신 햇살과 나긋한 바람에 언 땅이 녹고 물이 솟는다. 연초록과 샛노랑이 천지를 물들인다. 그러나 나무숲을 가린 빌딩숲 사이를 오가다보면 찬란한 봄은, 그만 없는 계절이 되고 만다. 아쉬움을 달래려 자연 가까이 머무르며 소설을 쓰고 시를 짓는 작가들에게 그곳의 봄소식을 전해주길 청했다. 부산 해운대와 을숙도, 전남 구례 지리산, 강원도 평창 대관령, 충남 보령 대천항에서 함정임, 이원규, 김도연, 김종광 등 네 명의 작가가 담아 보낸 봄! 


“모두에게, 어디에나 공평하게이 왔어요”

해운대의 봄
봄은 동쪽에서 와서 서쪽으로 흘러간다
                             글·사진 함정임(소설가)


부산의 봄은 동쪽에서 옵니다. 해운대 달맞이언덕과 청사포 그리고 해마루에서.

강의나 외부 약속이 없는 날에는 온종일 바다로 면한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데, 바다를 향해 책상이 놓여 있는 서재는 스크린으로 창을 가려 어두운 골방입니다.

 
봄은 골방으로부터 나를 불러내 달맞이언덕으로, 청사포로, 해마루로 이끕니다.

주말 어느 날에는 해 뜰 무렵 이른 아침에, 또 어느 날에는 해질 무렵 이른 저녁에.

아침 산책은 달맞이언덕의 해월정에서 청사포를 사이에 두고 송정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바다 쪽으로 툭 비어져 나온 해마루 정자까지의 여정입니다.

 

해마루 가는 길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가없는 바다,

그 아래는 하늘빛과 바다빛이 너무 맑고 푸른 나머지 모래마저도 푸르게 보인다는

청사포(淸砂浦)가 펼쳐져 있습니다.

4월 초면 이 달맞이길은 하얀 벚꽃 터널로 변하고,

청사포 기슭은 방아풀의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흔들립니다.


저녁 산책은 부산진역에서 울산을 거쳐 경주로 이어지는 동해남부선의 철도 건널목이 있는 미포 입구 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천천히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는 길입니다.

완만한 경사의 2차선 도로와 걷기 좋은 인도로 이루어진 이 길을 해운대 사람들은 달맞이길이라는 정겨운 이름에 ‘문탠로드’라는 이국적인 이름을 보태어 부릅니다.

문탠(moontan)이란 선탠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름 즈음 휘영청 높이 뜬 달빛을 말합니다.

그 빛을 쪼이며 걷는 길(road)이 바로 문탠로드입니다.

이 길에서는 미려한 해운대해수욕장의 해안선과 그 끝자락의 동백섬, 그 너머로 거대한 한 마리 새처럼 날개를 펼치고 있는 광안대교 아치, 바다를 향해 길게 머리를 내밀고 있는 이기대공원,

그리고 부산의 상징 오륙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미포, 달맞이길, 달맞이언덕 오솔길, 야외무대로 이어지는 문탠로드의 백미는 보름날 밤 달맞이언덕의 오솔길을 걷는 것입니다.

울창한 솔숲,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면 세속적인 관계와 의무들로 지치고 황폐해진 가슴과 귀가 말끔히 정화되는 듯합니다.


부산의 봄은 동쪽에서 와서 서쪽으로 흘러갑니다. 해운대에서 을숙도 인근까지 일주일에 사나흘, 강의를 위해 동아대로 가는 길은 부산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의 여행입니다.

봄바람 불고 지천에 꽃망울이 터지면, 학교로 가는 중간에 을숙도로 빠져서 날아가버린 철새들의 흔적을 쫓기도 하고, 황동규의 시 ‘몰운대行’처럼 내처 다대포, 몰운대로 달려가기도 하고, 보랏빛 등나무꽃 울울한 학교 앞 에덴공원으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봄은 샛길로 빠지지 않고 그냥 보내기는 차마 싱숭생숭한 것이니까요.

부산 7경 중 하나로 아름다운 낙조(落照)를 자랑하는 승학산 자락에 연구실이 있는 관계로,

그날의 강의를 마치는 저녁이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장엄한 봄 노을과 만납니다.

이때는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숭고(崇高)가 깨어나는 순간이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뒤흔들던 봄의 알 수 없는 불안이 고요히 다스려지는 순간입니다.   

1964년 김제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광장으로 가는 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밤은 말한다’ ‘동행’ ‘당신의 물고기’ ‘버스, 지나가다’, 중편소설 ‘아주 사소한 중독’, 장편소설 ‘행복’ ‘춘하추동’ 등이 있다. 현재 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강단에 오르며,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  


대관령의 봄
늦게 와서 더 반가운 계절
                     글·사진 김도연(소설가)


사실 대관령엔 봄이 없답니다. 매화와 벚꽃이 핀다는 남녘의 봄소식을

우리는 펄펄 날리는 눈송이를 보며 듣곤 하지요.

산동네 축대에 매달려 병아리 울음을 내뱉는 개나리와 담 너머 목련의 다소곳함에 취해

낮술을 마신다는 당신의 전화를 받으면 시샘만 날 뿐입니다.


나는 아직도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구들장을 덥히려고 입바람을 불며 불을 때고 있으니까요.

샛바람이 토해놓은 아린 연기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담 너머 복사나무를 기웃거리기만 합니다.

오지 않는 봄을 야속해하며.
대관령의 봄은 늦게 온답니다.

세상의 봄꽃이 모두 져야만 비로소 이 마을에 꽃이 피어나지요.

들판의 꽃다지, 나생이 그리고 산비탈의 참꽃, 함박꽃이 피어나도 저는 봄이 왔다고 노래하지 않습니다. 다만 길을 걷다 주저앉아 세상에서 가장 키가 작을 것 같은 노란 꽃다지를 오래 들여다볼 뿐이지요.
꽃샘추위와 손잡고 새벽에 몰래 내린 철모르는 눈,

그 속에서 떨고 있는 꽃에게 입김만 호호 불어준답니다.

두릅을 따려고 참꽃, 함박꽃 화사한 산속을 쏘다니다 멧돼지를 만나면 없는 꽁지가 빠져라 달아날 뿐이랍니다. 아, 가끔 볕 좋은 산자락에서 궁둥이가 뽀얀 고라니를 훔쳐보는 게 호사라면 호사입니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벌렁거린다니까요.


아주 게으르게 도착했지만 그래도 할 건 다 하는 게 대관령의 봄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질투를 한껏 받고 있는 우리 집 풍순이는 털갈이를 하느라 분주합니다.

움직일 때마다 민들레 홀씨 같은 털이 분분하게 날리곤 한답니다.

아마 그 꼴을 본다면 당신도 웃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뿐인가요. 눈 내리던 겨울밤에 태어난 송아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울타리 안팎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장난을 치느라 바쁩니다.

 한번은 풍순이에게 다가갔다가 혼쭐이 난 적도 있답니다.

이마에 하얀 털이 소복하게 나 있어 점박이란 별명을 얻은 송아지입니다.


아, 닭 이야기도 해드려야겠군요. 암탉은 병아리를 여덟 마리 깠습니다.

신기한 건 노란 병아리, 흰 병아리, 까만 병아리, 모두 제각각이라는 겁니다.

다른 암탉들이 낳은 알을 품어 제 새끼로 여기는 어미 닭을 보면 거룩해 보이기도 합니다.

‘닭대가리’라고 아무렇게나 내뱉었던 말을 슬그머니 거둬들일 수밖에 없게 합니다.

어미 닭이 앞서고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병아리들을 보고 있으면 대관령의 봄은 저도 모르게 길게 하품을 끄집어낸답니다. 줄에 묶여 있는 풍순이는 군침만 흘립니다.


그들이 지나간 길을 어머니와 아버지는 싸리비로 쓸고 있네요. 지난겨울 눈에 파묻혔던 나뭇잎들,

마른 풀들을 한데 쓸어 모아 바람 없는 해질녘에 태웁니다.

 나도 모닥불 옆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꿈을 꿉니다.
몇 밤을 더 자고 나면 싸리비가 지나간 자리마다 연둣빛 새싹이 고개를 내밀겠지요.

곰취, 나물취, 씀바귀가 담을 따라 피어날 것입니다.

올해 봄엔 그 쌉쌀한 향을 당신도 맡을 수 있기를.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강원대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강원일보·경인일보 신춘문예, 2000년 제1회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낸 책으로는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산문집 ‘눈 이야기’ 등이 있다. 현재 강원도 평창 대관령에서 당귀와 무 농사를 지으며 ‘농사꾼 소설가’로 살아가고 있다.  


대천항의 봄
의뭉스러운 산야
          글·사진 김종광(소설가)


건물과 도로로 뒤엉킨 수도권을 벗어난다 해도 공사판으로 변한

삼천리 금수강산의 어디인들 온전한 자연이 있을까요.

그래도 정도 차이는 제법 있을 법한데,

충청도는 정확히 반은 공사판이요,

반은 자연 그대로라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공사판의 운명을 피한 충청도 산야에 어김없이 초록이 돋아났습니다.


어릴 적, 봄 산에는 살아남은 나무밖에 없었습니다. 나무를 땔감으로 쓰던 시절,

산 바닥은 솔가지 하나 없이 깨끗했고,

마을 가까운 야산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반들반들해졌습니다.

이제는 나무를 하는 이도 없고 산속을 누비며 노는 아이들도 없는 산은 서서히 깨어나 푸르게 물들어갑니다. 앙상하게 마른 채 우거진 덤불 속에서 불을 두려워하며 추운 계절을 보냈던 나무들이 기지개를 켭니다. 새들의 지저귐은 활기차고 산짐승들의 활력은 용솟음칩니다.

그러나 공사판으로 변한, 더 이상 산이라고 할 수 없는 공터는 처량한 모습으로

기계를 기다릴 뿐입니다.


얼어붙어 있던 들판은 힘차게 머리를 내민 푸른 순들의 바다로 변했습니다.

들판 사이를 흐르는 물은 겨울 가뭄 탓에 보기 민망할 정도로 부족하지만,

잡고기들의 생명력은 여전합니다.

할머니들은 산비탈에 매달려, 삼동네 텃밭을 누비며 냉이를 캡니다.

어릴 적 내 어머니만큼 젊었던 그들은 내 어머니만큼 늙어서도 봄의 전령사 노릇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시내 상설시장에서 좌판을 벌일 것입니다.

경기도 속의 서울처럼, 농촌 마을에 둘러싸인 시내 사람들은

봄나물에서 봄이 왔음을 실감할 것입니다.

 

겨우내 경로당에서 시간을 죽였던 늙은 농부들은,

경운기를 탈탈거리며 논으로 나가 두엄 냄새 흩뜨리고 논바닥에 잠들었던 뭇 생명들을 깨웁니다.


지난 10년 세월, 참 좋았습니다. ‘소비가 미덕’이고, ‘부자 되세요’가 일상적인 덕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돈 버는 재미에 들려 있었고, 마음껏 소비하는 습관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맞은 최악의 불경기. 겨우내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비정규직으로 내려앉았고,

취직하지 못했고, 소득이 절반으로 줄었고, 이러저러한 불운이 닥쳐왔습니다.

복불복이라지만, 갑작스러운 궁핍과 고난은 추운 겨울을 더 춥게 만들었습니다.

 한우 먹다가 미국산 쇠고기나 먹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봄이 왔건만 도시사람이든 시골사람이든 우울합니다.


하지만 자연은 변함이 없습니다.

1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그러했듯 태연자약, 할 일을 합니다.

 봄은 시작이고 새출발이고 희망입니다.

지금 봄은 산, 언덕, 들판, 간척지, 저수지, 천변, 갯벌, 공원에만 싹을 돋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어김없이 싹을 돋게 합니다.

사람들은 봄옷으로 갈아입고 다시금 공사판을 가동시키지만,

마음이 하도 단단히 얼어붙어서 싹을 밀어 올리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봄의 힘은 강력합니다.

4월의 에너지는 광활합니다.

두엄을 분해하는 미생물들의 약동, 올챙이들의 경주, 까치 떼의 그악스러운 지저귐, 만발하는 꽃들, 저수지 수면을 박차 오르는 물고기들, 기계의 힘을 빌려 거침없이 분쇄되는 논바닥의 흙, 하천을 흐르는 물의 기세, 온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이려는 가공할 만한 식물의 번식, 산짐승들의 천진난만한 사랑놀이! 어느새 사람들도 봄에 젖게 될 것입니다.

오랜 침체를 털어버리고 희망을 노래할 것입니다.
흔히 ‘충청도 사람은 의뭉스럽다’고들 합니다.

‘의뭉’은 어쩌면 자연의 이치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지나치게 절망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기뻐하지도 않는, 대신 줏대를 지키면서 유쾌하게 살아가는 모습. 화려하지도 않고 볼품없을 정도로 평범해 보이는, 장삼이사(張三李四)같이 사이좋게 어울려 있는 충청도 산야는 의뭉스럽게 봄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197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계간 ‘문학동네’에 단편 ‘경찰서여, 안녕’,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해로가’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짬뽕과 소주의 힘’ ‘낙서문학사’, 장편소설 ‘야살쟁이록’ ‘율려낙원국’ ‘첫경험’ 등이 있다. 대산창작기금과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하였고, 충남 대천항 인근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지리산의 봄
봄, 다시 발효의 시간
                  글·사진 이원규(시인)


섬진강과 지리산에도 봄이 왔습니다.

살아있음의 징표인 들숨과 날숨의 한 순간에 다시 하늘이 열리고 매화 꽃망울이 터집니다.

 섬진강의 황어 떼를 따라 지리산에 봄이 오면 나는 하동의 미점마을에 갑니다.

매화마을보다 더 고적한 이 마을의 매화나무 꽃그늘에 앉아 굽이굽이 섬진강을 내려다봅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향기에 온몸을 내주고 있으면 어느새 매실주에 취한 듯 몽롱해지고,

평사리 들녘을 선회하는 솔개나 패러글라이더가 되지요.


꽃을 보며 매실을 생각하고, 급기야 매실주가 익을 무렵을 생각하면

또 한 해가 시큼해지고 넉넉해질 수밖에요.

술을 담근다는 것은 한 포기의 꽃을 심거나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기다릴 줄 아는 마음 때문일까요. 마침내 기다림의 여유를 깨우치고 나면 나날이 서두를 게 없고,

 마음의 병도 생기지 않습니다.

술이 익는 동안 그토록 격하던 마음마저 서서히 발효가 되기 때문이겠지요.


지난해에도 몇 가지 과실주를 담갔습니다. 봄에는 매실주를 담그고,

여름엔 비파주를 담가 술병에다 날짜와 이름을 써넣었지요.

 매실주엔 지리산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자주 얼굴이 어른거리는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써넣고,

지리산에 그리 많지 않은 비파를 따다가 담근 술에는 해가 바뀌기 전에

꼭 만나고픈 이들의 이름을 써넣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를 겁니다.

그들에게 알리지 않고 나 혼자 그리운 이름을 써넣으며 좋은 기억들로 빚어진 술을

담그기 때문이지요.

추석 직후에는 비운의 빨치산 총수 이현상이 죽은 빗점골에 가서 다래를 따와 술을 담그고,

 섬진강변 마고실의 옛집 마당에 파라솔처럼 자란 으름나무에서 딴 17개의 으름으로

술을 담갔습니다.


그때도 술병에 날짜와 이름들을 써넣었지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원로 시인의 이름도 써넣고,

언제나 마음이 훈훈해지는 선후배들과 술친구들의 이름도 써넣었습니다.

동시대의 한 하늘 아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인 사람들의 이름 사이에

이승의 악연일 수밖에 없었던 이름도 슬며시 끼워 넣었지요.

그 누구도 나의 술병에 자신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겁니다.

또 굳이 알 필요도 없고요.


술이 익어가는 동안, 꼭 만나지는 않더라도 나와의 관계 또한

술처럼 발효되고 발효될 것을 바랄 뿐입니다.

애써 초청하지 않더라도 술은 익어가고, 행여 내가 그들을 까맣게 잊은 날도

술은 익어갈 것이며, 나 혼자 그리움에 절절 매더라도 술은 익어가겠지요.


올해도 매실주를 담가야겠지요. 그리고 언제나 술을 담그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지요.

 그 술을 누가 마신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살다보면 악연마저도 오래 묵어 발효된 술처럼 숙명적인 인연이 될 수도 있으리니.

술병 속에서 과실주가 발효되듯이 우리의 인간사도 우주의 아주 작은 병 속에서 발효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걸어다니는 매실주요, 모과주요, 머루주입니다. 세상을 둘러보면 발효의 시간 속에서 나날이 향기 그윽해지는 사람들이 신생의 봄을 맞고 있습니다. 

196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계명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월간문학’,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 ‘옛 애인의 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빨치산 편지’ 등과 산문집 ‘지리산 편지’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등을 펴냈다. 신동엽창작상, 평화인권문학상을 수상했다. 홀연히 지리산으로 들어가 ‘지리산 시인’이라 불리며, 현재는 구례군 토지면에 살면서 순천대 문창과,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