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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피는 삶에 홀리다 / 손철주

 

 

 

 

 

 

 

 

꽃 피는 삶에 홀리다

시와 그림 통해 세상 되돌아보기

 

 

 

꽃 피는 삶에 홀리다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펴냄

미술 기자 출신의 칼럼니스트, 사단법인 ‘우리문화사랑’ 운영위원이자 학고재 주간인 손철주씨가 내놓은 매혹적인 에세이집이다. 3~4쪽 분량의 짧은 글 속에 있는 선조들의 시와 그림은 저자의 글과 함께 상승 작용을 일으켜 독자를 깊은 사색에 빠져들게 한다. 시와 그림을 통해 세상사를 되돌아보고,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21세기를 올바르게 살아가는 가치관에 대한 생각을 담았기 때문에, 철 지난 이야기처럼 고리타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유려한 문장 속에 숨어 있는 수줍은 유머에 슬며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다.

저자가 지인들과 만나면서 생긴 에피소드는 예술인들의 사사로운 모습을 엿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시 한 수를 보내온 치과병원장,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그림을 경매에서 얻었다며 좋아하는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 쉰 살을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난 미술사학자 오주석에 대한 기억 등 저자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의 멋스러움이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미술계에서 일한 ‘대가’로 형성된 저자의 인연이 부러울 지경이다.

이 책을 한 번 들면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서화의 의미가 현 시대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 ‘저는 빈방에서 꿈을 꿉니다/ 임이 먼 곳에 계신 걸 잊었고/ 이별한 마음마저 익숙지 않아/ 몸 돌려 껴안는데 허공이더이다.’ 청나라 시인 원매가 읊조린 애달픈 사랑의 감정이다. 연꽃과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빌려온 시와 사연은 구구절절한 사랑의 의미보다 훨씬 강렬하고 잔상이 많이 남는다. 이렇게 저자는 짧은 글 속에 시와 그림을 곁들였지만, 긴 여운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저자는 스테디셀러인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를 통해 편안하게 미술을 소개해준 칼럼니스트로 유명하다. 전작처럼 <꽃 피는 삶에 홀리다>도 고서화에 도통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써놓았다. 술을 이야기하면서 두보의 시를 예로 들고, 가짜 그림 파동을 겪었던 이중섭의 작품 <소>를 통해 한우를 예찬하는 기발함을 선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스스로 ‘난잡하고 농탕한 트로트 본색’이라고 밝혔다. 이번 에세이집을 통해 미술 이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총 3장 50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가족, 지인, 음식 등을 통해 발견한 인생사의 즐거움과 깨달음을 다뤘다. 2장은 시바 료타로, 이병주, 고려 충선왕 등 저자에게 감동과 회한을 주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3장은 신윤복과 김홍도의 춘화부터 19세기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의 <눈먼 소녀>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예술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에는 한국 화가인 사석원에 대한 각별한 분석과 흥미로운 해설이 돋보이는 글을 실었다.

에세이의 매력은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놓치기 쉬운 인생살이의 묘미를 집어내는 것이 아닐까. 독자들이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통해 “에세이에도 이런 힘이 있구나”를 느꼈을 것이다. <꽃 피는 삶에 홀리다>는 저자가 그동안 숨기고 있던 작가로서의 능력을 선보인 최초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손철주라는 이름을 앞으로 기대하게 만드는 에세이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