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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직한 감동 大魚 대학로 오르다 -연극 ‘노인과 바다’






연극 ‘노인과 바다’



“단돈 3만 원으로 이토록 수준 높은 연극을 볼 수 있다니! 대학로 만세!”
연극 ‘노인과 바다’(김진만 연출, 각색)를 보고 나오면서 바로 트위터에 올린 문장이다. 연극 ‘노인과 바다’는 마치 해물탕 같았다. 길 구석에 숨은 작은 식당에서 주문한 한 그릇의 해물탕. 소박한 해산물을 한데 넣고 오랜 시간 팔팔 끓여낸 육수는 환상적이었다. 한 숟가락 뜨자 몸 깊은 곳에서 ‘캬’ 소리가 났다. 재료도, 조리법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은 읽었던, 혹은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권유(?)로 읽어야 했던 책이다. 어부인 노인은 작은 조각배를 타고 망망대해에서 대어를 잡기 위해 노력한다. 이틀, 사흘, 나흘 고기와 사투를 벌이다 결국 대어를 잡지만 상어 떼에게 허무하게 빼앗긴다. 노인은 대어를 끌어올릴 힘조차 없으면서 낚싯줄을 놓지 않는다. 상어에게 작살을 잃은 후에도 가지고 있는 도구를 총동원해 끝까지 상어와 싸운다. 모든 걸 잃고 항구로 돌아온 후에는 한탄도, 후회도 하지 않는다. 노인의 태도는 인내에 대한 경외심까지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고 자신을 포기하기 때문에 패배하기 쉬운 법이지. 하지만 난 절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거야.”
이사 한번 해도 가구에 상처가 남게 마련. 하지만 노인의 이야기는 극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어디 한 군데 흠집을 남기지 않았다. 제작 기간만 5년이 걸렸고, 대본도 6번이나 새로 쓴 결과일 터. 주목할 점은 소설에선 비중이 크지 않았던 어린아이가 연극에서는 주요 내레이터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청년이 된 어린아이가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은 큰 몰입 효과를 낳는다. 관객들은 할아버지를 회상하는 청년에게 감정을 이입, 자신만의 향수에 젖어든다.

무대 소품과 조명도 일품이다. 특히 커다란 대어 소품은 익살스럽고 귀여운 구석이 많다. 대어 안에는 피 대신 붉은 장미꽃잎을 닮은 종이가 가득 차 있다. 대어가 상어의 습격을 받을 때 몸통이 해체되면서 그 안에 있던 빨간 꽃잎이 공중으로 날린다. 잔인하기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사람에 따라서는 숭고한 감정마저 갖게 된다. 청년은 극 속에서 ‘멀티맨’ 구실을 자처한다. 극을 이끌어가는 동시에 익살스럽고 공포스럽다. 배우 박상협은 엄청난 에너지로 청년 역을 완벽히 소화해낸다. 그리고 청년만큼 활동적으로 무대를 누비는 노인 역의 배우 정재진(58)을 보면 ‘저 힘의 원천은 어디일까’ 궁금해진다.

대학로 대로에서 한참 비켜 있는 작은 극장에서 매일 밤 100명도 안 되는 관객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배우들. 그들 역시 매일 밤 저마다의 바다에서 싸운다. 그들이 그곳에 있다는 게 대학로를 찾는 관객들에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4월 5일부터 오픈런. 서울 대학로극장, 문의 02-747-5811.
*...[Performance | 김유림의 All That 퍼포먼스] Copyright by donga.com



김진만 연출가 “연극 ‘노인과 바다’는 원작의 편견 깼다”

‘노인과 바다’ 하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원작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1952년 발표된 단편 소설로 대어(大漁)를 낚기 위해 바다로 나간 한 노인의 인생 역경을 담은 작품이다. 지난 1953년 퓰리처상을,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60여년 가까이 명작으로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전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진 단편소설이 김진만 PD의 손을 거쳐 연극 무대로 옮겨졌다. 국내에서는 최초다.

» » 연극 '노인과 바다'에서 열연하고 있는 정재진씨

큰 기둥은 ‘노인과 바다’와 비슷하다. 원형을 바탕으로 비틀기를 시도한 작품이라 신선하게 다가온다. 원작에서 등장한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했으며, 청년의 눈을 통해 노인이 그려진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눈앞에서 일어날 정도로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배우 정재진과 박상협이 ‘노인’과 ‘청년’으로 등장한다. 연극 ‘노인과 바다’는 유명 원작을 각색하는 작품이 갖고 있는 큰 장점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큰 줄거리가 널리 알려져 있어 접근성이 용이하고 이해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특히 연약한 인간으로 대변되는 노인의 눈을 통해 본 인생사는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주제라 몰입력을 높여준다.

하지만 그동안 연극 무대로 판을 옮길 수 없었던 건 무대 연출에 있었다. ‘망망대해’라는 바다를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두고 수많은 연출가가 고심했던 난제였다. 웬만한 무대 연출이 아니고서는 ‘바다’의 느낌을 쉽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관객의 수준도 상당히 상향돼 허술한 무대로는 입맛을 사로잡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많은 연출가가 도전을 하기도 전에 지레 포기했고, ‘노인과 바다’는 자연스럽게 ‘난공불락’의 성으로 통했다. 그랬던 작품이 김진만 연출가의 손에 의해 지난해 ‘제10회 2인극 페스티벌’에서 작품상과 최우수 연기상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태어났다. 이 같은 결과를 얻기까지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5년 동안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5년 전부터 ‘노인과 바다’를 준비하면서 우리네 모습과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지금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굉장히 고독하고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죠. 오래된 작품이지만 노인의 모습이 현대인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워낙 명작인지라 많은 분들이 논문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분석을 했더라고요. 그렇지만 역시 무대로 옮기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묘사가 대부분인데다 노인의 독백으로 구성돼 상상력을 넣어 극화시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죠. ‘이래서 이 훌륭한 작품을 무대에서 보기 어려웠구나’ 하는 걸 피부로 느꼈죠.”

무대로 옮겨오기 어려웠던 부분은 ‘바다’ 묘사다. ‘노인과 바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야기의 대부분이 바다에서 전개돼 무대에서 ‘바다’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관객의 몰입도를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었다.

“한 척의 배가 무대에 나옵니다. 얼핏 보기엔 ‘어촌의 느낌이 난다’ 할 정도로 빈약한 무대 설정이지만 망망대해라는 느낌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연극이 시작되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아 저게 바다구나’ ‘저 배가 오두막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주거든요. 열악한 환경이지만 배가 방향에 따라 회전하고 소용돌이치는 모습도 나오고 조명과 물안개로 세부적 느낌을 주고요. ‘저걸 보고 억지로 바다라고 상상해야 하나’ 기대를 하지 않았던 관객도 배가 출렁거리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놀라면서 몰입해가더라고요.”

무대 표현도 고민거리 중 하나였지만 가장 어렵게 다가온 것은 ‘원작’이라는 거대한 산이었다.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은 어린 시절부터 한 번쯤 제목이라도 접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고전이다.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도 많이 알고 있을 만큼 인기 소설이기도 하다. 따라서 연극으로 옮겨왔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원작이랑 똑같은 거 아냐”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김진만 연출가도 원작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가장 싸우기 어려웠던 대상이었다고 토로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편견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유명한 작품이지만 지루하지 않을까’ ‘노인이 혼자 중얼거릴 텐데 뭐 볼 게 있어’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그런데 의외로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다양한 번역본을 보고 연극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독창적 색깔을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노인과 바다’를 본 관객의 반응에서 가장 많은 의견은 “의외로 재밌다”이다. 이것은 ‘노인과 바다’의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원작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김진만 연출가도 “‘노인과 바다’는 원작의 편견을 뛰어넘은 선례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노인과 바다’를 무대 위에서 성공적으로 녹여낸 활약상을 높이 평가받아 김진만은 ‘2011년 올해의 젊은 연극인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막상 와서 보면 예상했던 것과 달리 재밌게 풀어가니까 반응이 뜨겁더라고요. 노인이 겪은 그날의 바다를 관객도 느끼는 것처럼 몰입하더라고요. 3분의 2정도는 웃고 박수를 쳐주시고요. 3분의 1은 극적 반전을 목격하게 되면서 예상하지 못한 감동을 받게 됩니다. 저에게 용기를 주신 관객이 ‘‘노인과 바다’ 원작의 본질적 매력을 느끼면서 유쾌하고 색다른 작품으로 다가왔다’는 말이었어요. 다소 거만한 표현일 수 있지만 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노인과 바다’는 고전이 갖고 있는 ‘어렵다’는 편견을 완전히 뛰어넘어서는 성공적 선례가 될 것이라는 걸요(웃음).”

현재 서울 대학로극장에서 상연 중인 ‘노인과 바다’는 꾸준한 인기에 힘입어 다음 달 5일부터 7월10일까지 앙코르 공연에 돌입할 예정이다. ‘노인과 바다’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게 된 김진만 연출가. 관객의 뜨거운 성원을 11년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2인극 페스티벌-명작을 만나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