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Book./冊's. 心理

-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 Douwe Draaisma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 Douwe Draaisma 

 

.

 

책 소개--

 

서너 살이 되기 이전의 기억이 거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괴로운 일들은 왜 하나같이 잊히질 않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쯤 의문을 품었을 법한 우리의 기억에 관한 여러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억이란 자기만의 의지를 갖고 있어, 잊지 않으려 해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들이 있으며 잊어버리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등 제멋대로다.

1980년대부터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우리의 기억 중에서 개인적인 기억이 저장되는 부분을 '자전적 기억 autobiographical memory'이라고 명명하고, 이를 파헤치고 밝혀내는 것을 자신들 연구의 목적으로 삼게 되었다.

자전적 기억이란 자서전처럼 우리의 머리 속에 기록된 삶의 연대기다. 그러나 자전적 기억은 수수께끼와도 같은 자신만의 법칙을 따른다. 그 법칙에 따르면,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은 너무나도 자세히 기억하게 되며 우리가 꼭 기억하고 싶어하는 순간에서는 희미해지기 일쑤다. 사소한 사건이 30여년 간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것도, 사람들이 어떤 일을 이야기할 때 날짜가 아니라 '내가 XXX에 있을 때 말이야...' 등 자신의 경험 위주로 이야기하는 것도 모두 자전적 기억이란 변덕쟁이가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 책은 이런 자전적 기억의 여러 수수께끼에 답하려 시도한다. 저자는 심리학의 역사를 통틀어 물음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여러 실험들뿐 아니라, 각종 시와 저작들, 철학자와 정신의학자, 생물학자와 신경학자의 연구 데이터까지 동원해 이 물음들에 답하고 있다.

 

 

 

著. 다이어 그라이스마 /Douwe Draaisma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의 심리학사 교수이다. 동 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한 그는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 연구를 수행했다. 기억이라는 언어의 은유적 본질을 다룬 그의 박사 학위 논문 《기억의 메타포》는 출간과 함께 국제적으로 큰 호평을 얻었으며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되었다. 1993년 흐로닝언 대학교로 복귀한 이후, 자전적 기억에 관심을 집중한 끝에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를 펴냈다. 이 책은 과학 저술에 주는 어벤티스 상의 최종 후보작에 오르는가 하면, 흐레스호프Greshoff 상, 2003 유레카 상, 얀 한로Jan Hanlo 문학논문상, 심리학협회상 등 과학과 문학 분야의 여러 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기억에 관한 통념을 깨뜨리고 늙어가는 뇌의 진실에 관해 말하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 등의 저서가 있다.

 

 

목차 --

 

 

 

1. 기억은 마음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와 같다
2. 어둠 속의 섬광: 최초의 기억들
3. 냄새와 기억
4. 어제의 기록
5. 내면의 섬광전구
6. 기억은 왜 거꾸로 돌리기가 안 되는가
7. 푸네스와 셰라셰프스키의 절대적인 기억력
8. 결함의 이점: 사방 증후군
9. 그랜드마스터의 기억: 톤 세이브란드스와의 대화
10. 외상과 기억: 뎀야뉴크의 사례
11. 리하르트 바그너와 안나 바그너: 45년의 결혼생활
12. “우리가 몰고 다니는 달걀형 거울 속에서”: 데자뷰 현상에 대해
13. 회상
14.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15. 망각
16. “내 눈앞으로 인생이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17. 기억 속에서: 정물이 있는 초상화
감사의 말
일러스트레이션 목록 및 출처

 

 

 

 
책 속으로 --

 

 

 

냄새와 기억에 관한 실험
냄새가 정말도 더 오래전의 기억을 더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걸까? 냄새를 통해 되살아난 기억이 시각이나 청각이나 촉각과 관련된 기억보다 더 밀접하게 기분과 연결되어 있을까? 도널드 레어드의 연구에서 응답자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옮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생각을 자세히 조사해보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레어드의 연구팀은 기억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응답자들에게 물어보지 않았고, 냄새가 아닌 다른 자극에 의해 되살아난 기억에 대해서도 물어보지 않았다.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레어드의 응답자들이 밝힌 것과 같은 개인적인 경험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화적 증거’로 분류하곤 한다.
--- p.59 '냄새와 기억에 관한 실험' 중에서

 

리뷰 --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는 누구나 한번쯤 의문을 품었을 법한 우리 기억에 관한 여러 문제를 다룬 책이다.
왜 서너 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없을까? 왜 수치스런 경험은 잊히질 않는 걸까? 왜 노인이 되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더 또렷해질까? 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의 기억은 사진처럼 선명할까? 왜 기억은 거꾸로 돌리기가 안 될까? 왜 냄새에 관한 기억은 그렇게 오래도록 강렬할까? ‘전에도 이런 상황을 경험한 것 같다’는 데자뷰는 왜 일어나는 걸까? 죽음에 임박해서 눈앞에 자신의 인생이 영화처럼 펼쳐지는 경험은 왜 일어날까? 정신적 외상은 우리의 기억력에 얼마나 치명적인가? 한번 보기만 해도 모든 것을 기억해내는 절대적 기억력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영화 <레인맨>의 주인공처럼 비범한 계산 능력을 지닌 자폐증 천재-백치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왜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 교수는 이 매혹적인 책에서 이와 같은 자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의 여러 문제들을 살펴본다. 그는 심리학, 문학, 철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시적인 감수성, 예리한 관찰력으로 이 문제들을 요령 있게 설명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의 기억과 정신, 시간과 인생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북돋는다.


기억 심리학과 자전적 기억
심리학의 역사에서, 즉 1879년 빌헬름 분트가 라이프치히에 심리학실험실을 열었을 때부터 ‘기억’은 심리학의 주요 주제였다. 1885년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기억을 정확히 측량할 수 있는 방법론을 확립함으로써 기억 심리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 의미 없는 단어를 외우고 얼마 후 그것을 다시 시험함으로써 기억 능력과 망각 정도를 측정하는 이러한 실험심리학은 일반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기억에 관해 갖는 많은 의문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었다.
1970~80년대부터 기억을 연구하는 많은 심리학자들은 에빙하우스가 정확성을 위해 희생시켰던 것, 즉 기억의 의미와 내용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기억 중에서 개인적인 기억이라 부를 수 있는 부분을 ‘자전적 기억’이라 명명하고, 이것의 신비를 파헤치는 것을 자신들 연구의 목적으로 삼았다.
자전적 기억은 자서전처럼 우리 머릿속에 기록된 우리 삶의 연대기다. 그러나 자전적 기억은 수수게끼 같은 자기만의 법칙을 따른다. 그것은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은 너무나도 자세히 기억하면서, 우리가 꼭 기억하고 싶어하는 순간에서는 희미해지기 일쑤다. 어떤 냄새 때문에 30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 생각나 우리를 깜짝 놀라게도 한다. 1997년 8월 31일에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고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전혀 대답할 수 없지만, 그날이 바로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숨진 날이라는 힌트가 주어지면, 그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의 상황이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생생히 떠오른다.
이 책은 이런 자전적 기억의 여러 수수께끼에 답하려 시도한다. 저자는 심리학의 역사를 통틀어 물음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여러 실험들뿐 아니라, 각종 시와 저작들, 철학자와 정신의학자, 생물학자와 신경학자의 연구 데이터까지도 모두 동원해 이 물음들에 답하려 한다. 그의 설명은 때로는 과학적이고, 때로는 문학적 은유로 가득 차 있다. 어떤 경우이든 우리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한다.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한 해가 또 갔구나! 지난 1년 동안 뭘 했지? 뭘 느끼고, 뭘 보고, 뭘 이룩했지? 어떻게 365일이 겨우 두어 달처럼 느껴지는 거지?”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개인적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시간이 점점 빨리 흐르기 때문에 한 해 한 해가 자꾸 줄어든다. 마흔 살, 쉰 살 생일이 지나면, 열다섯 살이나 스무 살 때에 비해 1년의 길이가 훌쩍 줄어든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빨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신비한 현상. 한 시간과 하루의 길이가 옛날과 똑같은 것처럼 보이는데도 1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이제까지 이런 신비한 현상을 많은 사람들이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인생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은 느낌은 시간에 대한 온갖 환상들 중 일부다. 시간의 길이와 속도는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다. 즉 우리의 시간감각의 핵심에는 기억이 있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은 우리의 기억을 반주 삼아 우리 내부의 시계에 맞춰 똑딱거리며 사라져간다. 시간과 기억에 관한 최근의 연구에서 학자들은 세 가지 메커니즘을 발견해 시간이 점점 빨라지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망원경 효과telescopy다. 망원경을 통해 사물을 보면, 그 물체가 아주 선명하고 자세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 물체까지의 거리가 실제보다 짧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과거를 돌아볼 때도 마치 망원경을 통해 보는 것처럼 사건들이 확대되어 보이기 때문에 시간적인 거리가 축소되고, 그 사건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대중적 사건들을 실제보다 더 최근의 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 흉악범죄의 죄인이 최근 석방되었다는 뉴스를 접하면, 사람들은 “아니, 형기가 벌써 끝났단 말이야? 그럼 그 사건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둘째, 회상 효과reminiscence effect다. 일반적으로 어떤 단어를 제시하고 그것에서 연상되는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가장 최근의 기억이 제일 많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즉, 더 어린 시절에 관한) 기억은 급격히 줄어드는 그래프를 보인다. 이것이 이른바 정상적인 ‘망각곡선’이다. 그러나 60대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실험을 해보면, 전체적으로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만, 유독 20세를 전후로 한 약 10년간의 시기에 기억의 양이 불록 솟아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노인들의 회상에서 특히 이 시기에 기억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가리켜 회상 효과라고 한다.
사람들은 기억 속의 사건이 일어난 날짜를 알아내려 할 때 자기만의 어떤 시간의 표식을 사용한다. “내가 P의 밑에서 일하고 있을 때” “내가 Q에 살고 있을 때” 식으로 말이다. 따라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스무 살 때 일을 더 쉽게 기억해내는 현상, 즉 회상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그 시기에 적용할 수 있는 시간의 표식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처음으로 ……했을 때” “내가 처음으로 ……을 시작했을 때” 등이 모두 이 시기의 전형적인 시간의 표식들이다. 그리고 이처럼 어떤 시기를 회고하면서 많은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기억을 별로 떠올릴 수 없는 시기보다 그 시기가 더 길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중년 이후에는 시간의 표식이 줄어들기 때문에 기억 속에 빈틈이 생기면서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셋째, 생리적 시계다. 우리 몸속에서는 수십 가지의 생리적 시계들이 똑딱거리고 있다. 호흡, 혈압, 맥박, 호르몬 방출, 세포분열, 수면, 신진대사, 체온. 이들은 모두 고유한 주기를 갖고 있으며, 우리 삶에 리듬과 박자를 부여해준다. 체내의 모든 시계를 통제하는 주인 역할을 하는 것은 시상하부 교차상핵SCN이다. 만약 SCN에 문제가 생기면 체내의 모든 시계가 고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SCN의 세포 수가 감소하고, 그것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도 줄어든다. 이로 인해 시간감각에 중대한 문제가 일어난다.
미국의 신경학자인 맹건Mangan은 노인들에게 하나, 둘, 셋 이렇게 세는 방식으로 3분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추정해보라는 실험을 했다. 젊은이들은 3초밖에 오차가 나지 않는 반면, 노인들은 평균 40초나 더 경과했다. 무언가 다른 일에 몰두하게 하면서 똑같은 실험을 하자, 노인들은 거의 2분에 가까운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비로소 3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은 느리게 가는 시계로 변해버리는 것 같다. 전체적인 속도가 그냥 느려지는 것이다. 젊은이의 생체시계는 대개 노인의 생체시계보다 빨리 움직인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하루가 길게 느껴지지만 나이를 먹으면 하루가 무서울 정도로 짧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현실 속의 시간을 헤아릴 때, 무의식적으로 생리적 시계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간, 즉 시계에 표시되는 시간은 계곡을 흐르는 강물처럼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인생의 초입에 서 있는 사람은 강물보다 빠른 속도로 강둑을 달릴 수 있다. 중년에 이르면 속도가 조금 느려지기는 하지만, 아직 강물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몸이 지쳐버리면 강물의 속도보다 뒤처지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제자리에 서서 강둑에 드러누워 버리지만, 강물은 한결같은 속도로 계속 흘러간다.”

데자뷰는 왜 일어나는가
“우리 모두 가끔 우리를 덮치는 이런 느낌을 경험한다. 우리가 오래전에 지금과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한 적이 있다는 느낌. 아주 오래전에 똑같은 사람들, 똑같은 물건들, 똑같은 상황들에 둘러싸인 적이 있다는 느낌. 마치 갑자기 기억이 난 것처럼,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느낌.”
디킨스는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입을 통해 데자뷰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는 데자뷰의 정체에 대해서는 무수한 가설이 있었다. 전생의 기억이라거나 우리 삶이 똑같은 형태로 한없이 반복된다는 증거라는 의문을 더하는 주장들이 있는가 하면, 꿈속에서나 그밖에 과거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고, 데자뷰 현상을 우리가 불러낼 수 있는 방어기제 중 하나로 보는 정신분석학적 해석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비교적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견해들이다.
첫째, ‘이중 이미지’ 가설. 우리 뇌의 두 개의 반구는 서로 번갈아가며 활동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좌반구와 우반구는 세심한 조화 속에서 번갈아가며 활동하기 때문에 감각기관에서 받아들이는 정보가 모두 통합적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한쪽 반구가 활동을 멈추기도 전에 다른 쪽 반구가 활동을 시작하면 일종의 ‘이중 이미지’가 나타난다. 눈앞에 보이는 장면 속에서 먼저 활동하던 반구의 희미해져가는 이미지가 계속 깜박거리는 것이다. 따라서 마치 이 장면을 두 번째로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똑같은 장면에 대한 데자뷰는 결코 한 번 더(즉 세 번째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뇌의 반구는 2개이지 3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헤이만스Gerard Heymans의 가설. 그는 최초로 데자뷰에 대한 대규모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데자뷰, 탈개인화(데자뷰와 반대로 낯익은 것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현상), 단어 소외 현상(친숙한 단어가 갑자기 아무 의미 없는 소리로 느껴지는 것)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데자뷰는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저하되는 바람에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정보와 관련된 연상 작용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서 현실이 어렴풋한 기억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단어 소외는 어떤 단어와 의미론적 기억이 연상을 통해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단어가 그냥 소리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탈개인화는 연상이 전혀 일어나지 않아서 단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친숙한 느낌을 잃어버리는 현상이다.
셋째, 1930년대에 캐나다의 신경학자인 와일더 펜필드Wilder Penfield는 간질 환자들의 측두엽의 특정 부위를 전극으로 약하게 자극하면 시간 지각이나 기억과 관련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일부 환자들은 전에 같은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느낌을 받거나(데자뷰) 순간적으로 전혀 낯선 환경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탈개인화). 데자뷰는 편도체, 해마, 측두엽의 일부가 동시에 활동하고 있는 신경회로에서 발생한다. 측두엽은 현재의 경험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해서 그 결과를 해마에 전달한다. 그러나 전기 자극에 의해서든 간질 발작에 의해서든 해마가 동시에 활성화되면, 해마는 새로 들어오는 정보를 기억으로 해석한다. 그 기억이 ‘언제’의 것인지를 알려주는 정보가 빠져 있지만(그것이 진짜 기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뇌가 처리하고 있는 모든 정보가 한데 합쳐져서 환자는 지금의 경험이 친숙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친숙하다는 느낌은 해마와 관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환자는 곧 종말이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측두엽의 활동 부위가 조금만 달라져도 해마와 편도체가 현재의 상황에서 연상되는 친숙함을 없애버리기 때문에 환자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모든 것을 완전히 낯설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내 인생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물에 빠지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가까스로 생존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이제 죽는구나 하고 생각한 그 짧은 순간, 자신의 인생이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죽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파노라마 기억panoramic memory이다.
수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과거의 일들이 눈앞에 나타나고, 너무나 평화로운 기분이 드는 이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자들을 조사한 결과 파노라마 기억의 공통된 특징을 찾아냈다. 파노라마 기억은 기본적으로 시각적인 경험이었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이미지들은 선명하고 자세했다. 모두들 자신이 ‘바깥’에 있는 구경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지들이 나타나는 속도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홀린 듯이, 그러나 수동적으로 그 이미지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기분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어렸을 때의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고, 사람들이 눈앞에 전개되는 이미지의 일부로 자신을 인식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까지의 뇌의 생화학적 연구와 간질 연구, 해마의 활동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런 파노라마 기억의 메커니즘을 설명해주는 이론을 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충격과 경악을 처음 경험하는 순간 대량의 아드레날린이 방출된다. 뇌는 극단적으로 활성화되며, 여러 가지 생각과 반응들이 빠른 속도로 연달아 나타난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시간이 길게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 순간이 지나면 스트레스, 통증, 산소부족 등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로 인해 엔도르핀이 생산된다. 그 덕분에 통증이 완화되고, 감각기관이 둔감해지며, 본능적인 공포로 인한 정신적 동요 대신 차분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처럼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과정에서 기억 및 시간인식과 관련된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 해마, 편도체, 그리고 측두엽의 다른 부분들에 있는 뉴런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하면서 일련의 이미지들이 아무렇게나 조합되어 의식 속에 매우 빠른 속도로 나타나게 된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이 이미지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망연자실한 상태이거나 완전히 행복감에 도취해서 모든 것을 온화하고 고요하게 바라본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이미지들을 보면서 마침내 의식을 잃는다. 의식을 잃지 않는 경우에는 통증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이미지들은 사라져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