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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사전 - 사랑, 그 불가항력의 낭비에 대한 보고서

 

 

사랑

사랑은 하나의 점이다. 선이나 면처럼 이어져 존재하지 않고, 찰나 속에서만 존재한다. 우리가
타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 순간, 사랑은 휘발되고 없다. 그런 고백을 듣는 그 순간,
그 말을 해주는 사람의 깊고 수줍은 눈빛을 바라보다 보면, 그 사이 눈 몇 번 깜박이다 보면,
사랑한다는 실체는 아득한 신화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사랑은 다만 가장 강력한
자장을 내뿜는 찰나이다.

사랑의 시작을 여는 필수조건에는 실수가 있다. 실수의 첫 발이 사랑을 점화시킨다.

 그 실수는 이후, 가장 특별한 것, 가장 현명한 것, 가장 필연의 것으로 미화된다.

사랑은 결례의 와중에서만 완성된다. 어른이 된 여성은 대부분 화장을 함으로써 예를 갖추기

때문에, 화장 안한 민낯의 여성을 본다는 것은 대개 사랑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

의복이 하나의 예가 되어버린 사람의 풍습 안에서, 옷을 벗는 것이 거의 부끄럽지 않고

살이 닿는 것이 행복일 때가 사랑이라면, 반드시 결례의 속살 속에서 사랑은 진실을 드러낸다.

결례가 버겁고 피곤한 것이지만, 그 중압감이 황홀해질 때가 사랑에 빠진 때이다.

예를 갖춘 사랑은 사랑의 단 것만을 취하고 쓴 것을 뱉어내는데, 이는 아무 얘기도 본격적으로

보여준 바 없이 끝을 맺고는 - 비극도 희극도 아닌 채-, '사랑'이라는 결론을 자막으로

장식한 후, 관객을 속일 수 있다는 막연한 - 그러나 헛헛하기 짝이 없는 - 미완성 영화일 뿐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매일 걷던 길도 생경하게 여겨지며 신선하게 느낀다.


그 생경함으로 짐짓 경건해지기조차 하는 것이다. 그 길에 서 있었던 무수한 자기 자신을

추억하며, 무미건조했던 예전의 자기 자신까지 생경하게 바라본다.

갓 사랑에 빠진 사람은 흔히 (남 얘기 듣는 걸 즐기지 않던 사람도) 응? 응? 하며 되묻고 -

자세히, 완벽하게, 속속들이 이해하려고 -, 질문을 첨가하게 된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도)

당신이 담배를 집어들고 두리번거리면 성냥을 갖다주러 발딱 일어난다. 언제나 대기조처럼

부르면 달려가고 달려가면 반기게 되는 것도 갓 사랑에 빠진 사람에겐 강령에 속한다. 또한,

매일매일, 오늘은 당신이 유독 예뻐 보이는 - 멋있어 보이는 - 날이기 때문에, 천장에 매달린

모빌을 바라보는 갓난아이처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안녕? 하고 만날 때는 환한 웃음과 함께 강인해지며, 안녕! 하고 헤어질 때는 슬픈 눈물로

한심하게 나약해진다. 비록 그들의 사랑이 표면에 행복을 가장한 피폐의 구도를 가졌을지라도,

 갖가지 잡념의 잔가지들을 뚝뚝 분질러 내버리며, 굵고 튼튼한 한 가지만을 손에 쥐려고

척추를 곧추세운다. 그리곤 각각의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생각을 하며,

그 단순한 생각을 이내 실행에 옮긴다. 그러한 단순한 생각과 실행에 서로서로 더할 나위 없는

팀웍을 보이며 그 팀웍 자체를 지상 최대의 목적으로 삼게 된다.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은 언제나

서로의 생각과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며, 또한 노련하게 보이며, 또한 담백하게 보이며,

또한 짙게 여겨진다. 그렇게 끈질기게 만나면서도 만나는 방식은 정해져 있어서,

우리는 같이 해보지 않은 게 너무 많아, 라고 아쉬워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가 당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지금껏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을 의심하지 않고 숭고하게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그 연애의 와중에서 너를 사랑한다는 상황은 여전하지만, 너를 사랑하는 주체였던

나 자신은 전혀 딴 곳으로 휘발돼 가버리는 것을 때로 느끼게 되는데, 그때가 바로 사랑에 '빠진'

상태가 사랑을 '하는' 상태로 전이되는 때이다. 그때에는 비로소 당신이 보고 싶지만,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나 꼭 봐야겠다는 긴박감 같은 것보다는 그저 오래도록 앓아온 폐병환자가

가슴 한 녘에 손바닥을 대고 콜록거리듯 마음속에 흐르는 수맥에 손바닥을 대고 뿌듯해한다.

그때는 보고 싶지만, 만나지 않아도 일상을 돌볼 수 있는 위치로 환원된다. 그때에 두 연인은

'신뢰'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게 된다. 상대를 신뢰하기도 하거니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마음

가장 안쪽에 깊숙하고 힘있게 받아들여 놓는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조금 옮겨왔을 때에 두 연인은 서로에 대하여, 둘 간의 관계에 대하여

'기도' 비슷한 것을 하게 된다. 스스로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잘 살기를, 원래 있던 자리와

사랑에 빠졌던 그 지점 사이의 경계선 어디쯤에서 서로를 지켜보며 서성이기를 기도하게 된다.

그때의 서성임은 배회가 아니라, 일종의 지킴이 역할이다 - 마을 어귀의 장승이나 솟대처럼.

그리고 서로에게 마음에 드는 풍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창문이 되어, 당신의 방 벽에 붙어 있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주홍글씨 내지는 노예문신 같은 게 자기 몸 어딘가에 낙인처럼 찍혀있단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한다. 그 느낌에 대하여 쓸쓸하지만, 용감하게 수용하게 되며 그러한 사실을

정면 응시하면서, 고달픔이나 안타까움보다는 명쾌함과 안락함 쪽으로 생각을 기울인다. 그렇게

 마음의 고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 이상의 우왕좌왕은 없다. 이별의 순간 이전까지는.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자신이 할 일에 방해받지 않기 위하여 연락을 두절할 '용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 즈음에서는 싸움도 빈번하게 일어나며, 여간한 자극으로는 당신의 연민과 위안과

달콤한 한 마디를 얻어내기 어렵게 되어, 엄살을 떨기도 하고 우울을 가장하기도 한다. 할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푸념하기도 하며, 실컷 잠을 자고 싶다고 토로하기도 하며, 어딘가에서 한참

동안 숨어 있다 오고 싶다고도 하고, 어지러이 흐트러진 마음을 정돈하고 청소하고 싶다는 말을

비극적인 어투로 - 그러나 의기소침한 마음으로 - 하게 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위로해주던

당신이 옆에 달려와 주더라도 마음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쪼르륵 달려와 주는 당신이

재미있게 여겨질 뿐. 지금 당신이 내 옆에 있는데, 나는 왜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거죠, 류의

허무하디 허무한 말들을 난사하며 조금씩 서로의 마음에 찰과상을 입히기 시작한다.

고통에 대해 무장해제를 하고 있는 서로를 향해서.

물처럼 흐르는 욕망의 에너지는 부분적인 충족으로 조금씩 해갈되며, 탐욕과 그리움은 아득한

추억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보다 자유로운 감정 상태 속에서, 쓸쓸한 외연과 허기로 충만한

내포를 겸비하게 된다. 동질성의 발견으로 친화력을 발휘했던 한때의 희희낙낙이 있던 자리에,

 이질성의 발견으로 피로를 증폭시키는 현실이 눈 앞에 도래한다. 여기까지가 '사랑'이며,

 여기까지의 긴 - 혹은 짧은 - 여정 속에서, 누군가는 이 사이클 전부를 회전하며,

누군가는 공회전하며, 또 누군가는 요약적으로 건너뛰며 지나간다. 그러나 시작과 끝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욕망을 정신적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 즉 숭고한 어떤 논리에 아전인수하려는

노력 같은 것이, 때로 종교에 귀의하는 수도사처럼 정갈한 사랑의 행로를 가게 하기도 하지만,

그 행로도 시간 앞에서는 책갈피 속 네잎클로버거나 포르말린에 담궈둔 심장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나 사랑은 찰나 속에서만 존재하며, 그 찰나의 짜릿한 합일 이후는 길고 긴 이별을

변주하는 몸짓에 불과하다. 너무도 길고 긴 이별이지만, 그 과정이 인내할 만한 것은 -

어쩌면 달콤하기까지 한 것은 - 정든 사람의 익숙한 손과 익숙한 체취라는 향정신성 추억 때문에

그러하다. 이 지점에서 죽음처럼 밀려드는 피곤을 감내하지 않으면 사랑의 묘약은

사랑의 독이 되며, 독이 번지는 영혼의 육체는 지옥을 온 몸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아주 귀하게, 사랑의 행로를 숭고하게 받아들여 고행을 각오하기도 하는데,

고통의 대가에 따라 가장 알맞은 보상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면서, 고결함과 순도를 얻고,

예전의 속도와는 전혀 다른 느림으로, 예전의 불규칙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균형으로,

천천히 천천히 성소로 입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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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은 1967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가톨릭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마쳤다.

1993년 계간 『현대시사상』에「우리는 찬양한다」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현재, '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시집『극에 달하다』(문학과지성사, 1996),

장편동화『오징어섬의 어린왕자』(웅진닷컴) 등의 저서가 있다.

언제나, 마음이 가 있는 곳에 몸이 가 있기를 원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육체가 움직이지

않는 이상한 게으름과, '마음'이 움직이면 뜬금없이 부지런해지는 양 극단을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 '마음' 혹은 '진실'을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노동을 잡다하게 하고 있으며,

이「마음사전」을 쓰는 일은 그러한 잡다한 노동 중의 하나이자, 노동의 막간에서 취하는

가장 행복한 휴식이다.